옛 이야기/한국의 姓氏 전주추씨(全州秋氏) 늘푸른 봄날처럼 2019. 5. 6. 13:38 ■ 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 전주추씨(全州秋氏) ■ 시조 : 추수경(秋水鏡) 시조 추수경(秋水鏡)은 추엽(秋饁)의 손자 추적(秋適, 추계추씨)의 8세손이다. 추수경이 명나라에 가서 1591년(선조24년) 무강자사를 지내고 다음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원병의 일원으로 제독 이여송(李如松)의 부장(副將)이 되어 아들 형제와 함께 귀국하여 곽산, 동래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운 후 전주에서 살았으며, 죽은 후에 전주에 안장되고 완산(현 전주) 부원군에 추봉되어 본관을 전주로 하였다.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추발(秋潑, 1849 己酉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4년(1867) 식년시 삼등(三等) 추한진(秋翰鎭, 1813 癸酉生) : 사마시(司馬試) 헌종12년(1846) 식년시 삼등(三等) 추대관(秋大寬, 1739 己未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38년(1762)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사마시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추씨는 1985년에는 총 5,212가구 22,141명, 2000년에는 총 841가구 2,67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