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ehouse/꺼꾸로 읽는 삼국지 18. 제갈량의 원래 성은 갈 씨였다 늘푸른 봄날처럼 2019. 5. 6. 13:13 ■ 제갈량의 원래 성은 갈 씨였다 . 제갈량의 성씨에 대해 정사는 아무런 의문점도 제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제갈량전> 에는, "제갈량의 자는 공명이고 낭야군 양도 사람으로 한의 사령교위 제갈풍의 후예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배송지는 정사에 주를 달면서 제갈량의 본래의 성은 '제갈'이 아니라 '갈'이라고 했다. 그 주에서는 응소의 {풍속통], 위요의 [오서]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갈량의 일족은 원래 갈 씨 성으로 진말에 진승과 오광의 봉기에 가담한 장군인 갈영의 자손이다. 갈영은 전공을 올렸지만 진승에게 살해되었기 때문에, 한의 문제 때 그 공적을 인정해 자손을 제현후(제현은 낭야군에 속한다)에 봉했다. 그 후 여러 대가 지나서 그들의 일족이 제현에서 양도로 옮겨갔는데, 양도에는 원래부터 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둘을 구별하기 위해 양도의 사람들은 그들을 제갈 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후 언제부터인가 두 글자인 제갈이 통용되게 되었다. 이 설에 대해서 중국 성씨의 뿌리를 고찰하는 입장에서 이의가 제기되었는데, '갈'이라는 성은 상고시대 중원에 있었던 갈천 씨라는 부족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평화를 즐기고 생업에 힘쓰며, 춤과 노래를 즐기는 부족이었다. 유명한 '갈천 씨의 가무'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갈천 씨의 자손이 바로 갈 씨이다. 하 왕조에 이르러 백익의 자손이 제후가 되어 갈백(갈은 하남성 영릉현의 동북쪽)에 봉해졌다. 갈백의 자손도 갈 씨라 칭했다. 제갈이라는 성씨는 백익의 후예인 갈백의 나라가 멸망한 후, 갈씨의 일족이 산동의 여러 성에 옮겨 산 것에서 비롯되었다. 진말에 진승이 봉기했을 때 갈영은 여러 번 공적을 세웠는데, 중상모략을 당해 진승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그 후 한의 문제 때 갈영의 자손을 제현후에 봉한 이래로 그의 자손을 제갈 씨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갈이라는 성은 제현에서 양도로 옮긴 후에 그곳의 다른 갈씨와 구별하기 위해 고친 것이 아니라, 양도에 옮겨 살기 전부터 봉지와 관련해 고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