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고전 隨筆

연기(燕記) 음식(飮食) / 홍대용(洪大容)

늘푸른 봄날처럼 2019. 5. 1. 15:30

연기(燕記) 음식(飮食) / 홍대용(洪大容)

 

 

술에는 홍소주(紅燒酒청주(淸酒황주(黃酒)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황주라는 것은 탁주다. 술잔은 아주 작아서 겨우 몇 숟갈 정도이며, 술을 데우는 납기(鑞器)1) 역시 겨우 한 잔이 들어갈 정도였다. 이것은 둥글고 허리가 가는데 그 허리 있는 데서 막혀 그 위쪽에 술을 붓고 아래로 화기를 통하면 금방 데워진다. 잔에다 부어 들고 조금 마시더라도 반드시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모으고 숨을 길게 내쉰다. 이야기를 하다가는 잠시 후에 다시 마시는데, 대개 7~8번을 마셔야 한 잔을 다 마시게 된다. (중략)이래서 종일 마셔도 심하게 취하는 일이 없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어 흥취를 누리며 실패하는 일이 없다. 옛날 사람들이 하루에 3백 잔을 마셨다는 것도 진실로 까닭이 있으니 그리 이상히 여길 것이 없는 듯하다.

 

남을 대접할 때에는 우선 차를 내는 것이 예로 되어 있다. (중략)이야기하다가 마시다가 하면서 한 식경(食頃)2)이 되어야 그 잔을 다 마신다. 그러면 시자(侍者)는 다시 끓는 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둔다. (중략)

 

[]는 품종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청차(靑茶)를 가장 하품으로 친다. 보이차(普洱茶)를 시중에서는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데 가짜가 많다. 절강국차(浙江菊茶)도 향기가 아주 맑아 먹을 만하다. (중략)

 

밥그릇은 크기가 찻잔만한데 모양은 조금 다르다. 대개 4~5명 혹은 6~7명이 같이 한 탁자에 둘러앉아 먹는데, 먼저 나물과 장() 같은 것을 놓고 사람마다 밥그릇과 찻잔을 하나씩 마련해 놓은 뒤에 사발을 가져다 밥을 담아 주고 다음에 끓인 국과 구운 고기를 내온다.

 

대개 밥과 차, , 고기는 먹는 대로 가져다주는데 많이 먹는 사람은 여덟아홉 사발까지 먹으니 우리나라 사람의 보통 먹는 양보다 2배 정도를 먹는 셈이다.

 

밥쌀은 다 산도노미(山稻老米)로서, 기름기가 없고 거칠어서 먹기가 어려웠다. 관동(關東)에는 전부 소미(小米)3)와 촉서(蜀黍)4)로서 노미마저도 역시 얻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사절(使節)들이 갈 적마다 마른 쌀자루 수백 포를 준비해 갔으므로, 일행 중 주방에서 기식하는 자들은 다 우리나라 쌀을 먹었으며 그밖에 역관 이하들은 다 노미를 먹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노미란 것은 곧 노미(澇米)인데 물에서 건져낸 쌀을 말한다.’고 하였다. 대개 창고에다 쌀을 쌓아두는 사람들은 반드시 물에 넣었다가 건져내어 말린 다음에 이것을 저장하는데, 이렇게 하면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략)

북경 이외의 음식점에서는 안주와 반찬에 돼지고기만을 쓴다. 탕국은 호로분탕(胡盧粉湯)5) 같은 것이요, 일상 먹는 음식물엔 파·마늘 같은 것을 섞는다. 갑자기 맛을 보면 누리고 매워 비위를 거스르며 구역질나서 먹지 못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으스름 새벽 눈보라가 칠 때는 이것이 아니고는 추위를 이겨내지 못한다고 한다. (중략)

 

배가 혹 아프거나 체하였을 때는 빈랑(檳榔)6) 한 조각을 씹으면 조금 후에 편안해진다. (중략)

 

돼지와 양을 주로 많이 먹고 닭과 거위가 그 다음이며 소와 말은 도살을 엄금하고 있다. 황성 안에 오직 한 곳의 도살장만이 하루에 소 몇 마리를 잡아서 대궐로 들여보낸다고 한다.

 

황성 사람들은 자그마한 연회에 사용하는 음식들은 모두 가게나 시장에서 사다가 쓴다. 시장에는 백물이 갖추어져 있지 아니함이 없다. (중략)녹용떡, 인삼떡, 계란떡 같은 것은 맛이 진기하여 먹을 만하며 관()7) 안팎에 많이 있다. 북경에는 이름도 없는 떡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감미와 향내를 위주로 하고 있다. (중략)

벌꿀은 거의 드물고, 단것을 취하는 데는 전적으로 사탕을 사용한다. 만약 사탕 한 덩어리가 크기가 손바닥만한 것이라면, 그 값이 은전으로 한 푼 정도니 원료인 사탕수수가 남방에서 얼마나 많이 생산되는 것인지를 가히 알 수 있다.

 

용안(龍眼)8)·여지(荔枝)9)·건포도·밀조(蜜棗)10)민강(閩薑)11)·귤병(橘餠)12) 등은 우리나라에서 진귀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빙당(氷糖)13)과 팔보(八寶)14) 같은 여러 사탕들은 그 제작과 모양은 다르지만 맛은 다 같은 사탕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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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납기(鑞器): 백철그릇.

2) 식경(食頃): 식사를 마칠 수 있는 시간.

3) 소미(小米): 좁쌀.

4) 촉서(蜀黍): 수수.

5) 호로분탕(胡盧粉湯): ‘호로(胡虜)’는 북방의 소수 민족을 이르는 말이요, 분탕(粉湯)은 밀가루를 풀어서 끓인 맑은 장국.

6) 빈랑(檳榔): []과 랑[]은 모두 귀한 손님을 일컫는 말이듯이, 사람을 사귈 때 귀한 손님들에게는 반드시 이 과일부터 대접했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야자나무로서, 전통적으로 담배 이상의 기호식품으로 환각 성분의 중독성 식물이어서, 대만에서는 이를 통제하고 있으나, 쉽게 통제되지 않는 식품이다. Betelnut.

7) (): 국경이나 요지의 통로에 두어 드나드는 사람이나 화물을 조사하던 곳. ‘관내(關內)’에 대해서는 전주 428) 참조.

8) 용안(龍眼): 생김새가 용의 눈알과 비슷하다고 해서 용안(龍眼)이라고 하며, 그 모양이 둥글어서 원안(圓眼)이라고도 한다. 생김새는 여지(荔枝)와 같고 빈랑(檳榔)과 비슷하나 작다. 살이 여지보다 엷고 맛도 덜하여 여지노(荔枝奴)라고도 한다.

9) 여지(荔枝): 양귀비(楊貴妃)가 가장 좋아했다는 여지(荔枝)’는 중국의 남방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과일로, 그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나무에서 열매가 달린 나무를 통째로 뽑아서 낙양(洛陽)까지 운송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의 뷔페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과일이다.

10) 밀조(蜜棗): 꿀에 조린 대추.

11) 민강(閩薑): 생강을 설탕물에 조려 만든 과자.

12) 귤병(橘餠): 귤을 설탕이나 꿀에 조리어 만든 과자의 한 가지.

13) 빙당(氷糖): 겉모양이 얼음 조각처럼 생긴 감미료로 사용되는 얼음사탕인데, 특히 과실주를 담글 때 사용하면 좋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소화기능을 돕고 몸의 기()를 보태주며, 호흡기 계통에 효력이 있다고 하였다.

14) 팔보(八寶): 중국에서 '()'의 발음은 '(: 발전하다)'의 발음이 같아서, 8이라는 숫자가 복이 있는 숫자라고 하여, 각종 간판과 전화번호 등에 많이 쓰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팔보(八寶)’라는 사탕도 여덟 가지의 빛깔을 내는 사탕이 아닐까 싶다.

 

 

해설:

 

지은이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홍지(弘之)이다.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음보(蔭補)로 세손익위사시직(世孫翊衛司侍直)1)이 되었고, 이듬해 선공감(繕工監)2) 감역을 거쳐 사헌부 감찰, 태인현감(泰仁縣監)을 역임하고 영천군수가 되었다. 북학파(北學派)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 등과 깊은 친교를 맺으면서 실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765(영조 41)에는 숙부가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군관(軍官)으로 수행하여, 청나라의 학자들과 사귀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구(地球)의 자전설(自轉說)을 대중에게 설파하였다. 주요저서로는 담헌서(湛軒書)가 있다.연기(燕記), 음식(飮食)담헌서(湛軒書)외집 10권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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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손익위사시직(世孫翊衛司侍直): ‘세손익위사는 세손은 모시고 호위하는 관청인데, ‘시직(侍直)’은 정8(正八品) 서반 무관(武官)이다.

2) 선공감(繕工監) 감역: ‘선공감은 토목과 영선(營繕: 건축물 따위를 짓거나 수리하는 일)에 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이며, 감역(監役)은 역사(役事)를 감독하는 종9품 벼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