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의 샘/Opera·Aria & Lied 글린카(Glinka) -Barcarolle / Arax Davtian 늘푸른 봄날처럼 2019. 4. 26. 10:37 Glinka / Barcarolle Barcarolle (Usnuli Golubye) Farewell to Saint Petersburg No.8 Mihail Ivanovich Glinka, 1804 ~ 1857 Text: Nestor Kukol'nik Sop Arax Davtian Usnuli golubye, sivodnya, / Kak fchira, akh, volny udalye. Nadolgo I – da utra! / U nas i v mrake nochi Volnenye lyubvi / Agnyom garit f kravi. I pleskom razmakhnulas / Shirokaye veslo, I tikho raspakhnulas /Zavetnaye akno, /I vam pakoya, volny. The blue waves are asleep. / Those swift waves, Day after day. Until what time? / Until morning breaks. In the darkness of the night, / The feeling of love Brings tears into my eyes. / Burning my blood hot. The sound of splashing paddle / heard, her window opens quietly. You waves will have no peace,/ While I’m there. Farewell to Saint Petersburg (Proshchaniye s Peterburgom)는 Nestor Kukol'nik의 text에 쓴 Mikhail Glinka의 12곡 romance 이다 제 8 번곡 바르카롤(Barcarolle) 은 원래 6/8박자나 12/8박자의 부드럽게 흔드는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베네치아 곤돌라 사공의 노래를 말하는데, 18, 19세기에 와서 오페라 아리아에서 피아노 소품에 이르는 수많은 성악음악과 기악음악에 영향을 주었다. 1710년 프랑스 작곡가 앙드레 캉프라의 무대 음악 〈베네치아인의 축제 Les Fêtes vénitiennes〉(1710)에 삽입된 곡 〈뱃사공들의 축제 Fête des barquerolles〉에 이 용어가 처음 나타났다. 그후 조반니 파이지엘로, 카를 마리아 폰 베버, 다니엘 프랑수아 에스프리 오베르, 조아키노 로시니, 주세페 베르디, 요한 슈트라우스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의 오페라에 바르카롤이 등장했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바르카롤 중 자크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Tales of Hoffmann〉에 나오는 것이 가장 유명하다. --------------------------------------------- Arax Davtian 아르메니안 인민가수 , 아락스 다브티안은 아르메니아 출신 최고의 소프라노 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수정처럼 맑았으며 정확한 인토네이션, 아름다운 프레이징으로 노래하였다 모짜르트 작품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고 거장 스피파코프와 함께 세계적으로 활동하다 2010년 61세를 일기로 타계한 몀소프라노 Mihail Ivanovich Glinka 러시아 작곡가. 스몰렌스크 부근 노보스파스코에의 대지주 집안 출신. 1818년 페테르스부르크 기숙학교에 입학, J. 필드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J.N. 후멜과 만나고, 루슈킨과 친교를 맺었고, 졸업 후인 22년에 작곡을 시작했다. 30년 봄에 가극을 배우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가서 V. 벨리니·G. 도니체티와 알게 되었다. 밀라노에서 작곡가로 인기를 얻었으나 러시아풍의 작곡을 지망, 33년 귀국 도중에 베를린에서 S.W. 덴에게서 작곡법을 배우고, 34년 귀국하여 애국적 영웅 이반 스사닌을 제재로 한 오페라 작곡에 몰두하였다. 니콜라이 1세의 명령으로 《황제에게 바친 목숨》으로 제목이 바뀐 이 작품은 36년에 초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이윽고 푸슈킨의 서사시에 바탕을 둔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에 착수하여 42년에 초연되었으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에 절망한 그는 2년 후에 고향을 떠났다. 파리에서 L.H. 베를리오즈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의 관현악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이듬해 에스파냐에서 작곡한 《에스파냐서곡 제 1 번》으로 결실을 맺었다. 바르샤바에서 관현악곡 《카마린스카야(1848)》를 작곡하였다. 국민악파(國民樂派) 창시자로서 19세기 러시아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