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2부 인조반정, 그 비극의 뿌리(8)

늘푸른 봄날처럼 2019. 4. 24. 11:37



■  원손 대신 동생을 후사로 세우는 인조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소현세자의 후사 문제였다. 
당시 종법에 따르면 당연히 소현세자의 맏아들 석철이 뒤를 이어 세손이 되어야 했다.
세자시강원의 필선 안시현이 "원손을 세손으로 세우자"라는 상소를 올린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석철은 원손으로 불리고 있었다. 인조는 이 내용의 당연한 상소를 
즉각 물리치면서 "이러한 소인의 행태는 내가 차마 똑바로 볼 수 없다"라면서 안시현을 
파직시켜 버렸다. 원손이 뒤를 잇게 하지 않으려는 인조의 속셈은 소현세자가 비명에 급서한 
석달 후인 재위 23년 윤6월 2일 드러난다. 인조는 대신 및 정부의 당상.육경.판윤과 
양사의 장관 16명을 인접한 자리에서 폭탄선언을 한다.
"내게 오래 묵은 병이 있는데 원손이 저렇게 미약하니 성장하기를 기다릴 수 없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는 원손이 아닌 다른 인물, 즉 대군을 후사로 삼겠다는 충격발언이었다. 
자칫하다가는 훗날 조정에 피바람이 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럴 때의 가장 좋은 처신은 법과 원칙에 따르는 것이었다. 
법과 원칙에 따르면 원손이 세손이 되어야 했으므로 당연히 반대가 잇달았다. 
좌의정 홍서봉이 나섰다.
"옛 역사를 상고해 보면 태자가 없으면 태손이 뒤를 이었으니 이것이 바꿀 수 없는 
떳떳한 법입니다. 상도를 어기고 권도를 행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 아닐 듯합니다."
영중추부사 심열, 판중추부사 이경여, 원손 사부 김육 등도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인조는 영의정 김류를 끌어들였다.
"이 일은 오로지 영상에게 달려 있으니, 경이 결단하라."
후사를 정하는 일은 영의정의 권한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인조와 반정 주역 김류 사이에 
밀약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김류는 미리 계획한 대로 세조의 둘째 아들로서 
보위를 이은 예종과 덕종의 둘째 아들 성종이 왕위를 이은 예를 들었다. 둘째 아들이 보위를 
이은 예를 듦으로써 원손을 폐하고 대군을 세우려는 인조의 의중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우찬성 이덕형, 병조판서 구인후, 공조판서 이시백, 이조판서 이경석 등이 
모두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원손을 폐하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대다수 신하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인조와 사전 밀약한 또 한 인물 낙흥부원군 김자점이 
인조의 의중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 일은 성상의 깊고 원대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니, 
의당 속히 결정해야 할 일인데, 어찌 우물쭈물 미룰 필요가 있겠습니까?"
인조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 말이 옳다."
드디어 김류가 김자점과 한편임을 실토한다.
"지금은 신민들의 기대가 모두 원손에게 있는데도 전하께서 이러시는 것은 
반드시 바깥 사람이 알 수 없는 궁중의 일입니다. 그러니 성상의 뜻이 이미 정해졌다면 
신이 어찌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인조가 드디어 자신의 본뜻을 밝혔다.
"원손은 자질이 밝지 못하여 결코 나라를 감당할 만한 재목이 아니다."
원손 사부 이식이 이 말을 반박했다.
"진강할 때 보니 원손의 재기가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인조의 의사는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우찬성 이덕형이 인조의 눈치를 보는 여러 신하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오늘 성상께서는 비록 종사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시지만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미 
바로잡힌 원손의 명호를 바꾸려고 하시는데 뭇 신하들이 모두 바람에 쏠리듯이 
따라 버린다면 장차 저런 신하들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인조가 한참 동안 묵묵히 있다가 물었다.
"대신들의 뜻이 모두 일치하였는가?"
김류가 대답했다.
"이의가 없는 듯합니다."
원손을 폐하고 대군을 세우자는 말이었다. 인조가 물었다.
"자식이 둘이 남아 있으니 대신이 그 중에 나은 사람을 결정하라."
봉림대군과 인평대군 중에서 고르라는 말이었다. 
신하들에게 다음 왕이 될 사람을 고르라는 이 한심한 하교에 홍서봉이 아뢰었다.
"대군은 조신들과 서로 접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그 우열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상의 간택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은 다 용렬하니 취하고 버릴 것도 없다. 
나는 그 중에 장자를 세우고자 하는데 어떤가?"
김류가 맞장구쳤다.
"장자로 적통을 세우는 것이 사리에 합당합니다."
"봉림대군(효종)을 세자로 삼노라."
이에 원손 석철이 폐위되고 봉림대군이 세자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원손의 자리를 대군으로 바꾸는 데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나라 사람들이 후사로 믿고 있던 원손이 폐립된다면 
이는 자리를 빼앗기는 데서 국한되지 않고 목숨까지 빼앗길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