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한국의 姓氏 대흥 필씨(大興 弼氏) 늘푸른 봄날처럼 2019. 4. 15. 11:32 ■ 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 대흥 필씨(大興 弼氏) ■ 시조는 조선 때 무과에 급제한 필몽량(弼夢良)이다. ◎관향 -충청남도 예산 ◎시조 -필몽량 (弼夢良) ◎주요 집성촌 -함경남도 함흥시 ◎주요 인물 -필성뢰 ◎인구(2000년) -172명 ● 역사 시조 필몽량의 후손 필두만(弼斗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부사(府事)의 증손(曾孫) 필성뢰(弼聖賚)는 1798년(정조 22)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에 이르렀다. 한편 필성뢰는 동국명신록(東國名臣錄)'에도 올라 있는데, 대대로 함흥(咸興)에 살았다고 적혀 있다. ● 본관 연혁 대흥(大興)은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에 속한 지명으로 백제시대에는 임존성(任存城) 혹은 금주(今州)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임성군(任城郡)으로 개칭하여 웅주 (熊州: 公州)의 관할로 있었고, 청무현(靑武縣: 靑陽)과 고산현(孤山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대흥군으로 바꾸고, 1018년(현종 9) 홍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는 대흥현이 되었고, 1682년(숙종 7) 대흥군으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대흥군이 되었다가 1896년 충청남도 대흥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예산군, 덕산군과 함께 예산군으로 통합되면서 대흥군은 폐지되었다. 1934년 대흥면(大興面)으로 유지하다가 예산군에 편입되었다. ●인물 필성뢰(弼聖賚, 1752년생) : 조선 중기의 문신. 함흥 출신.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내수(乃受). 첨지(僉知) 필두만(弼斗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필흥방(弼興邦)이고, 아버지는 필은상(弼殷相)이며, 어머니는 이춘발(李春發)의 딸이다. 1792년(조선 정조 16년) 생원이 되고,179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관직은 사성에까지 이르렀다. 대대로 함흥에서 살았다. 필조은(弼祚殷, 1772년생) : 조선 순조(純祖) 1년(1801) 무과 급제. 신유(辛酉) 정시(庭試) 병과(丙科) 37위. 아버지는 유학(幼學)을 역임한 필광삼(弼光三). 필범집(弼範集, 1765년생) : 조선 순조 9년(1809년) 무과 급제. 기사(己巳)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13위. 아버지는 필대룡(弼大龍).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대흥필씨는 1985년에는 총 39가구 181명, 2000년에는 총 52가구 17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