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고전 隨筆

논신돈소(論辛旽疏) / 이존오(李存吾)

늘푸른 봄날처럼 2019. 4. 13. 14:21

논신돈소(論辛旽疏) / 이존오(李存吾)

 

 

신등(臣等)이 삼가 보오니, 318일 궁전 안에서 문수회(文殊會)가 열렸을 때에, 영도첨의(領都僉議) 신돈(辛旽)이 재상의 반열에 앉아 있지 않고 감히 전하와 더불어 나란히 앉아 그 거리가 몇 자에 지나지 않으므로, 온 나라 사람이 두렵고 놀라워 흉흉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대체 예란 상하의 계급을 구별하여 백성의 뜻을 안정시키는 것인데, 진실로 예법이 없다면 무엇으로 군신이 되며, 무엇으로 부자(父子)가 되며, 무엇으로 국가를 다스리겠습니까? 성인이 예법을 마련하여 상하의 명분을 엄격하게 한 것은 그 도모하는 바가 깊고 그 뜻이 원대한 것이었습니다.

 

적이 보옵건대 신돈은 임금의 은혜를 지나치게 입어서 나라의 정사를 제멋대로 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당초 영도첨의로서 감찰(監察)을 맡았을 때, 명령이 내리던 날, 예법으로서는 의당히 조복(朝服)을 차리고 나아가 은혜를 사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달이 되어도 나오지 않더니, 급기야 대궐의 뜰에 들어와서는 그 무릎을 조금도 굽히지 않은 채 늘 말을 탄 채로 홍문(紅門)을 출입하고 전하와 함께 나란히 호상(胡床)에 앉으며, 그 집에 있을 때에는 재상들은 그 뜰아래에서 절을 하였으나 모두 앉아서 접대하였으니, 이것은 비록 최항(崔沆김인준(金仁俊임연(林衍)의 소행에서도 또한 이러한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옛적에는 승려인 만큼 의당히 치지도외(置之度外)하여 반드시 그 무례함을 책망할 필요가 없었지마는, 이젠 재상이 되어 명분과 지위가 이미 정해졌으니, 감히 예법을 어기고 강상(綱常)을 훼손시키기를 이와 같이 할 수가 있습니까? 그 근본이 되는 이유를 따진다면 반드시 사부(師傅)라는 이름에 의탁하겠지마는, 유승단(兪升旦)은 고왕(高王)의 스승이요, 정가신(鄭可臣)은 덕릉(德陵)의 스승이었으나, 신등은 그 두 사람이 감히 이런 일을 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자겸(李資謙)은 인왕(仁王)의 외조부였으므로 인왕께서 겸양하여 조손(祖孫)의 예로써 상견(相見)하려 하였으나 공론이 두려워서 감히 하지 못하였으니 대개 군신의 명분이란 본디부터 정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예법은 군신이 생긴 이래로 만고를 지나면서도 바꾸어지지 않은 것이니, 신돈과 전하께서 사사로이 고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돈이 어떠한 사람이건대, 감히 스스로 높이기를 이처럼 하고 있습니까? (중략)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은 말하기를, “기강이 서지 않아 간웅(奸雄)이 좋지 못한 마음을 품는다면 예법은 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습성은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으니, 만일 전하께서 반드시 이 사람을 공경하면서도 만백성에게 재해가 없게 하려면, 그의 머리를 깎고 그의 옷을 물들이고 그의 벼슬을 삭탈하여 사원(寺院)에다 두고서 공경할 것이요, 반드시 이 사람을 써야만 국가가 평강(平康)하겠다면, 그 권력을 제재하여 상하의 예를 엄하게 하고서 부리어 써야지만 백성의 마음이 안정될 것이요, 나라의 어려움도 풀어질 것입니다.

 

또 전하께서 신돈을 어진이라 한다면, 신돈이 일을 맡은 이래로 음양이 때를 잃어서 겨울철에 우레가 일고 누른 안개가 사방을 막아버리는 듯하며, 열흘이 넘도록 날이 컴컴하고 한밤중에 붉은 기운이 돌고 천구성(天狗星)이 땅에 떨어지며, 목빙(木冰)이 지나치게 심하고, 청명(淸明)이 지난 뒤에도 우박과 찬바람이 일어나는 등 하늘의 기후가 여러 차례 변하고, 산새와 들짐승이 백주에 성중으로 날아들어 달리고 있으니, 신돈에게 내린 논도섭리공신(論道燮理功臣)의 호가 과연 천지와 조종(祖宗)의 뜻에 합치하는 것입니까?

신등은 직책이 사간원(司諫院)에 있으므로, (신돈이) 전하를 아끼는 재상으로서 그 자격이 미흡하여 장차 사방에 웃음거리가 되며, 만세에 기롱(譏弄)의 대상이 될까 보아서 부득이 침묵을 지키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책망을 면하려고 하는 바입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는지라, 대답하심이 있기를 삼가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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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수회(文殊會): 국가적 행사로서의 호국법회(護國法會) 중의 하나.

2) 영도첨의(領都僉議): 고려시대 수상 급의 관직.

3) 신돈(辛旽): 고려 말기의 승려(?-1371). 자는 요공(耀空)이요, 본관은 영산(靈山)이다. ()은 집권 후에 사용한 속명(俗名)이며, 승명(僧名)은 편조(遍照), 법호는 청한거사(淸閑居士)이다. 어머니는 계성현(桂城縣) 옥천사(玉川寺)의 비()였다. 당시 노비가 중이 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영산(靈山)의 유력자였기 때문에 승려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측근인 김원명(金元命)의 소개로 공민왕(恭愍王)을 처음 만나게 되어 궁중에 드나들기 시작하고 왕의 사부(師傅)가 되어 국정을 자문하였다. 왕은 그가 "()를 얻어 욕심이 없으며, 또 미천하여 친당(親黨)이 없으므로 큰일을 맡길 만하다"면서 신뢰했다. 그리하여 인사권을 포함한 광범위한 안팎의 권력을 총괄하게 되자 그가 출입할 때에는 왕과 같은 의례가 행해질 정도로 전권을 휘둘렀다. 전제 개혁(田制改革), 노비 해방 따위의 개혁 정책을 펴기도 했으나, 상층 계급의 반발로 실패하였으며, 후에 왕의 시해(弑害)를 음모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4) 흉흉(洶洶)하다: 분위기가 술렁술렁하여 매우 어수선하다.

5) 홍문(紅門: 홍살문[紅箭門]이라고도 불리는데, 본래 궁전, 관아나 능원(陵園) 등의 앞에 붉은 칠을 하여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6) 호상(胡床): 중국식 걸상.

7) 최항(崔沆): 고려 시대 무신 정권기의 집권자(?-1257). 초명은 만전(萬全), 본관은 우봉(牛峰)이었다. 어머니는 폐기(嬖妓) 서련방(瑞蓮房)으로 창기 소생으로 송광사(松廣寺)에서 승려가 되어 쌍봉사(雙峯寺)로 옮긴 뒤 무뢰승(無賴僧)을 모아 문도(門徒)로 삼고 식화(殖貨)를 일삼다가, 1248(고종 35) 아버지 최우(崔瑀)의 명으로 환속, 최항(崔沆)으로 개명하고 아버지가 죽자 정권을 이어받았다. 집권 초에는 인심을 얻으려고 힘쓰기도 했지만, 차츰 사치와 향락에 빠져, 많은 중신을 죽였으며, 몽고에 대하여는 강경 정책을 썼다. 진평공(晉平公)에 추증되었다.

8) 김인준(金仁俊)임연(林衍): 고려 무신정권의 전성기는 최충헌(崔忠獻)의 집정시기였다. 그는 이전의 무신집권 시와는 달리 1인 독재 권력을 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자손에게 세습시키기까지 했던 것이다. 최충헌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최우(崔瑀: 뒤에 최이[崔怡]로 개명)가 권력을 이으면서 삼별초(三別抄)를 조직하여 무력기반을 크게 확충하고 30년간 집권하였다. 이후의 권력은 그의 첩자(妾子)인 최항(崔沆)에게 세습된다. 그는 불과 8년 만에 병사하고 다시 최항의 첩자인 의()4대 집정이 되었으나 여러 차례의 실정으로 결국 그의 가노(家奴) 출신인 김인준(金仁俊)에 의해 살해되면서 김인준의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그도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던 임연(林衍)에 의해서 살해를 당하고 권력은 그 아들인 임유무(林惟茂)에게 이어지지만 무신정권은 이미 권력기반을 잃고야 말았다.

9) 강상(綱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五倫)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이른다.

10) 사부(師傅): 스승.

11) 유승단(兪升旦): 고려 고종 때의 문인(1168-1232). 초명은 원순(元淳)이요, 본관은 인동(仁同),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수찬관으로 ?명종실록(明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중국 원나라가 침입하였을 때 강화 천도를 반대하였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경사(經史)에 능통하고 불전(佛典)에도 밝았으며, 특히 고문(古文)에 뛰어나서 최초의 경기체가로 알려진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는 원순문(元淳文)’이라 칭해지기도 하였다. 뒤에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졌다. 그의 시문은 ?동문선(東文選)?, ?청구풍아(靑丘風雅)? 등에 전한다.

12) 고왕(高王): 고종(高宗).

13) 정가신(鄭可臣):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1298). 초명은 흥(), 자는 헌지(獻之), 본관은 나주(羅州),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전고(典故)에 밝고 문장에 능하여 많은 사명(辭命: 사신이 외교 무대에서 하는 말)을 지었으며, 저서에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이 있다. 1290년 세자가 원()나라에 갈 때 그 스승으로서 수행하였고, 문장에 능하여 역사서 ?금경록(金鏡錄)?을 찬집하였다. 청백리로도 명망이 높았다.

14) 덕릉(德陵): 충선왕(忠宣王).

15) 이자겸(李資謙): 고려 시대의 척신(戚臣)(?-1126). 둘째 딸이 예종(睿宗)의 비가 된 후 익성공신(翼聖功臣)이 되고 인종(仁宗)이 즉위하자 셋째와 넷째 딸을 비로 삼게 하여 외척(外戚)으로서 권세와 부귀를 누리며 전횡을 일삼다가 척준경(拓俊京)에게 쫓겨나 귀양 가서 죽었다.

16) 인왕(仁王): 인종(仁宗).

17) 사마광(司馬光: 1019-1086): 송대(宋代) 학자, 정치가. 산서성(山西省) 출생으로, 자는 군실(君實), 호는 우부(迂夫), 또는 우수(迂叟)이다. 사마온국공(司馬溫國公)의 작위를 하사받았으므로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 통칭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저자로서 유명하다. 구법파(舊法派)의 영수로서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과 논쟁을 벌였다.

18) 천구성(天狗星): 평범한 유성(流星)보다 훨씬 밝은 유성. 화구(火球) 또는 불꽃별똥이라고도 한다.

19) 목빙(木冰): 추운 날씨에 비, , 서리 등이 나무에 엉겨붙어 결빙한 것. 빙화(氷花).

20) 청명(淸明): 이십사절기의 하나. 춘분(春分)과 곡우(穀雨)의 사이에 들며, 45일 무렵이다. 청명절.

21) 논도섭리공신(論道燮理功臣): ‘도를 논함에 있어 천지의 음양을 잘 조화시키는 공신(功臣)’이라는 뜻이다.

22) 사간원(司諫院): 임금에게 간()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간원(諫院)미원(薇院).

23) 기롱(譏弄): 웃음거리.

 

 

해설

 

지은이 이존오(李存吾: 1341-1371)는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를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 또는 고산(孤山)이라 한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학문에 힘썼으며, 강개(慷慨)한 뜻과 절조가 있었다. 용모는 단정하고 맑았으며, 몸가짐은 정중했고 말수가 적었다.

 

1360(공민왕 9)에 문과에 급제, 1366년 우정언(右正言)이 되어 신돈(辛旽)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으나, 이색(李穡) 등의 옹호로 극형을 면하고 장사감무(長沙監務)로 좌천되었다. 그 뒤 공주 석탄(石灘)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울분 속에 지내다가 요절(夭折)하였다. 사후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 추증되었다.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정도전(鄭道傳) 등과 친교를 두터이 했다. 신돈의 전횡을 풍자한 시조 1수를 비롯하여, 3수의 시조가 ?청구영언?에 전해지며, 저서로는 ?석탄집? 2권이 있다. 신돈을 풍자한 시조는 다음과 같다.

 

구룸이 無心(무심)탄 말이 아마도 虛浪(허랑)하다.

中天(중천)에 떠 이셔 任意(임의)로 다니면셔

구태야 光明(광명)한 날빗을 따라가며 덥나니.

 

여기서 구룸은 간신(奸臣), 바로 신돈(辛旽)을 가리키는 말이요, ‘날빗(날빛)’은 임금의 은총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글은 ?동문선? 52권의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의 일종인주의(奏議)에 속하는 글로서, 일종의 서간문에 해당하는 수필이라 할 수가 있다.(한국문학개론 편찬위원회 편, ?韓國文學槪論? , 혜진서관, 1991. pp.542-54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