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한국의 姓氏

당진한씨(唐津韓氏)

늘푸른 봄날처럼 2019. 4. 7. 21:49

    
    ■ 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 당진한씨(唐津韓氏) 
    
    ■ 시조 : 한공서(韓公瑞)
    한공서(韓公瑞)는 고려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지냈다고 한다. 
    문헌이 없어 세계나 본관의 유래는 알 수 없다.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한숙(韓淑, 1494 甲寅生) : 문과(文科) 중종20년(1525) 식년시 병과(丙科)
     한호(韓灝, 1494 甲寅生) : 문과(文科) 명종1년(1546) 식년시 을과(乙科)
     한주(韓澍, 1494 甲寅生) : 문과(文科) 중종28년(1533) 별시 병과(丙科)
     한간(韓侃, 1621 辛酉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한우(韓佑, 1642 壬午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한인복(韓仁福,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한주(韓澍, 1603 癸卯生) : 사마시(司馬試) 중종26년(1531) 식년시 삼등(三等)
     한과(韓○, 1786 丙午生) : 사마시(司馬試) 순조19년(1819) 식년시 이등(二等)
     한숙(韓淑, 1786 丙午生) : 사마시(司馬試) 중종8년(1513) 식년시 삼등(三等)
     한주(韓澍, 1786 丙午生) : 사마시(司馬試) 중종26년(1531)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문과 3명, 무과 3명, 사마시 5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당진(唐津)은 지금의 당진군 당진읍 일원의 옛 이름으로 백제 때에는 벌수지현(伐首只縣) 
    혹은 부지군(夫只郡)이라 불렀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우래현(于來縣)을 설치하고 
    지심주(支潯州: 洪城)의 관할로 두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당진현으로 이름을 고치고 
    혜성군(槥城郡: 沔川)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운주(運州)에 속하였다가, 
    1106년(예종 1)에 감무(監務)를 두며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 당진현으로 개편되어 조선시대 계속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당진·면천이 군이 되어 홍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충청남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당진군 10개면이 
    3개면으로 폐합되고, 면천군이 폐지되면서 면천군 관할 22개면이 7개면으로 
    조정되어 당진군의 일부가 되었다. 1917년 마암면이 면천면으로, 
    1928년 이배면이 당진면으로, 1942년 범천면이 우강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2년 당진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당진한씨는
    1985년에는 총 47가구 200명, 
    2000년에는 총 115가구 35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