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ehouse/꺼꾸로 읽는 삼국지

1. 도원결의는 없었다

늘푸른 봄날처럼 2019. 3. 31. 10:02



■ 도원결의는 없었다  

유비, 관우, 장비는 삼국시대 촉나라의 중요한 인물들이다. 
이 세 사람이 공적으로는 군주와 신하, 사적으로는 의형제 관계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송, 원대 이후 민간문학 분야에서 세 사람의 관계 및 이들의 천하평정 과정이 
문학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미화되고 과장되었으며, 
그 와중에서 서서히 도원결의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은 원대에서 명대에 걸친 혼란의 시대를 산 사람으로, 
당시 많았던 농민봉기의 대부분이 결의의 형식으로 조직되었다. 
나관중 자신도 왕이 되려는 뜻을 품었었고, 농민봉기와 깊은 관련이 있었으므로 
아마도 원나라에 반대해 봉기를 일으키려는 '반원기의'에 참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이유로 그가 도원결의 이야기를 쓸 때에도 송, 원대부터이며 형성되어 있었던 이야기에 
현실사회에서 보여지는 결의의 형식을 전형화해서 이 이야기를 완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역사를 합리적으로 연장시키고 발전시켜 만들어졌으며, 인물들의 성격을 독자들의 
심리에 일치시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 결과 수백 년 동안 누구나 알게 될 정도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 것은 물론, 다른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진수'의 [삼국 지]에 
약간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장비는 관우를 형으로 대접했다고 하며, 
유비는 두 사람을 특히 신뢰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 세 사람의 관계를 '은혜는 형제와 같다', 
'은혜는 부자지간과 같다','의리에 있어서는 임금과 신하였다'는 등의 일반적인 형태의 서술만 
있을 뿐 세 사람이 정식으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 때문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도원결의의 이야기는 작자가 꾸며낸 허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반드시 허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은혜는 형제와 같다'라는 기록과 역사적 측면에서의 이들의 관계, 그리고 역사적, 
문학적 사실성의 측면에서 도원결의 이야기는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튼 이야기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간주되고 있으며, 
'하북성'탁현에는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은 구체적인 지점인 '충의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말하는 장비의 집 뒤뜰에 있던 
'복숭아 나무가 있는 정원'이라는 것이다. 
사실 수백 년 동안 이러한 사실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탁현에는 또 하나의 주장이 있다.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은 곳은 
복숭아 나무가 있는 정원이 아니라 탁현의 남쪽에 위치한 '수문구'의 옆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여기에는 세 사람의 의로운 사람의 묘인 '삼의묘'가 있었는데, 건물은 세 명의 
의로운 사람인 유 비, 관우, 장비를 비유해 
길이, 넓이, 높이가 모두 1미터 정도 되었다고 한다. 
사실 유비, 관우, 장비는 [삼국지연의]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주인공들이다.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으며 힘을 합쳐 재난에 대처하고, 위로는 나라에 보은하며 
아래로는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하고자 맹세한 이야기, 
또 동년, 동월, 동일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동년, 동월, 동일에 죽자고 
서로 맹세한 이야기, 그리고 유비가 관우, 장비의 복수를 하기 위해 
오나라를 토벌하는 이야기까지, 
나관중은 전체의 반이 훨씬 넘는 지면을 이용해 
세 사람의 충의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 사람은 결의로 형성된 의협심을 위해서는 목숨을 희생하는 것도 
아쉬워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 결의는 죽을 때까지 변치 않았다. 
바로 이런 까닭에, 도원결의에 관한 이야기가 비록 허구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일을 실제로 행해졌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