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고전 隨筆

용병편(用兵篇) / 신흠(申欽)

늘푸른 봄날처럼 2019. 3. 19. 20:19

용병편(用兵篇) / 신흠(申欽)

 

 

우리나라는 일찍이 남쪽의 왜적에게 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 왜적이 칼 하나를 가지고 천 리의 땅을 밀고 들어오기를 마치 사람이 없는 듯이 했다. 들판에서 만나면 감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달아나고 성에서 만나도 지키지 못하고 흩어졌는데, 군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훈련되지 않은 군사를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또 서쪽의 오랑캐에게 곤욕을 당했다. 한 번 군사를 보냈다가 온 군사가 패몰하고 두 장수가 항복했으니 심하도다, 옛날과 똑같이 훈련을 시키지 않은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훈련되지 않은 군사를 가지고 왜적과 오랑캐의 사이에 끼였으니 백성이 어찌 곤궁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나라가 어떻게 위태롭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군사는 양남(兩南)1)과 서북(西北)2)에서 많이 뽑는데, 양남은 백제와 신라의 유민(遺民)이다. 영남의 풍속은 질박하여 침착하고 노력하여 풍요롭게 사니 잘 가르치면 넉넉히 윗사람에게 향응하는 군사가 될 것이고 호남의 풍속은 민첩하고 날래며 기변(機變)3)이 많으니 잘 가르치면 여유롭게 응용할 수 있는 군사가 될 것이다.

 

서북의 지역은 오랑캐와 접하고 있는데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으로, 예로부터 잘 싸운다고 이름이 났다. 갑옷을 입히지 않은 말을 타고 맨몸으로 달리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소리치며 나무 활에 싸리화살을 쏠 때마다 빗나간 것이 하나도 없으니, 이들을 가르치면 충분히 당할 수 없는 군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백제가 가르쳐서 나라가 강해졌고, 고구려가 가르쳐서 중국과 겨루었고, 신라가 가르쳐서 삼한(三韓)을 통일했다. 군사는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훈련을 시키면 강해지고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세상이 달라진다 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관자(管子)4)가 말하기를 군사를 국경 밖으로 출동시키지 않고도 상대방에서 대항할 수 없는 것이 여덟 가지가 있다. 재물이 천하에서 제일 많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재물이 천하에서 제일 많아도 장인(匠人)이 천하에서 제일 우수하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장인이 천하에서 제일 우수하더라도 병기가 천하에서 제일 좋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병기가 천하에서 제일 좋더라도 군사가 천하에서 제일 정예롭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군사가 천하에서 제일 정예로워도 명령이 천하에서 제일 엄하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명령이 천하에서 제일 엄하더라도 훈련이 천하에서 제일 잘 되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천하를 두루 알면서도 기수(機數)5)에 밝지 못하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으니 기수에 밝다는 것은 군사를 쓰는 형세이다.”고 하였는데 진실로 훌륭한 말이다.

 

장차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재물·장인·병기·명령·훈련은 준비하는 도구이며 기틀과 수는 결정하는 물건이다. 안에서 계획이 결정되면 군사를 출동할 때 두려움이 없고 적의 실정에 밝으면 적을 만나도 용감하게 전진할 수 있어서 비바람처럼 행동하고 나는 새처럼 신속히 처리하므로 마치 빈 곳을 점령하고 그림자를 치듯이 단서 없이 시작하고 끝도 없이 마무리 지어 싸우기도 전에 이기게 될 것이다.

 

적을 이기는 방법은 비록 기수에 있으나 군사를 격려하는 방도는 상과 벌일 뿐이다. 밝은 형벌은 죽이는 일이 아니며, 밝은 상은 헛되이 남발함이 아니다. 반드시 상을 줄 만한 자에게 상을 주고 상을 주지 말아야 할 자에게는 주지 않으면 밝은 상이고, 반드시 형벌을 주어야 할 자에게 형벌을 주고 주지 않아야 할 자에게는 형벌을 주지 않으면 밝은 형벌이다.

 

그러므로 상이 적어 사람들이 권장하므로 낭비되지 않는 일이며, 형벌을 적게 주어 사람들이 조심하므로 죽이는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군사가 용맹한지 비겁한지를 묻지 않고 장수가 인재인지 아닌지를 묻지 않고 병기가 날카로운지 무딘지를 묻지 않고 재물이 넉넉한지 부족한지를 묻지 않은 채 수많은 군사를 굶주린 호랑이의 입에다 대주고 있다. 게다가 장수를 선발하는 데도 법도가 없어 군사에게 수탈을 잘 하는 자를 발탁하고 뇌물을 잘 바치는 자를 승진시키고 임금의 측근을 잘 섬긴 자를 높여 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유기(由基)6)처럼 활을 잘 쏘고 손빈(孫臏)7)·오기(吳起)8)와 같은 지략이 있고 오확(烏獲)9)처럼 용맹하고 경기(慶忌)10)처럼 민첩하여도 감문(監門)을 지키는 한낱 병사에 지나지 않게 되는데, 그래가지고서야 능히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오랑캐가 우리에게 화친하자고 미끼를 던지고 있는데 까닭 없이 화친을 청하는 것은 모략이다. 적이 우리를 모략한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 스스로가 도모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적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똑같은 연()나라 군사이지만 악의(樂毅)11)가 부리면 이기고 기겁(騎劫)12)이 대신하면 패했으며, 똑같은 조() 나라 군사이지만 염파(廉頗)가 거느리면 온전하고 조괄(趙括)이 대신하면 죽었으니13), 장수다운 장수를 얻으면 군사도 헛된 군사가 되지 않아서 그칠 때는 발을 베기라도 한 것처럼 그치고 행군할 때는 흐르는 물과 같이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군사는 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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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남(兩南): 영남(嶺南)과 호남(湖南)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서북(西北): 서도(西道=서관[西關]: 황해도와 평안도)와 북관(北關:함경도[咸鏡道]) 지방을 아울러 이르는 말.

3) 기변(機變): 때에 따라 변함.

4) 관자(管子: ?-B.C. 645): 중국 춘추시대 제() 나라의 정치가 관중(管仲)에 대한 존칭이다.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 법가의 조()로서, 포숙아(鮑叔牙)와의 우정(友情)으로 널리 알려진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의 주인공이다. 저서로 ?관자(管子)?가 있다고 한다.

5) 기수(機數): 기회를 잘 포착하는 일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의 효과적인 활용.

6) 유기(由基):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양유기(養由基). 양유기는 활을 잘 쏘아 100보 떨어진 곳에서 버드나무 잎을 맞혔는데, 100번을 쏘면 100번 모두 명중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천양(穿楊)’ 또는백보천양(百步穿楊)’이라고 하는데 백발백중(百發百中)의 활솜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병칭되는 것이 관슬(貫蝨)’ 또는 관슬지기(貫蝨之技)’이다.

한편, 옛날 중국에 감승(甘蠅)이라는 명궁이 있었는데, 그 제자인 비위(飛衛)는 더욱 활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에게 기창(紀昌)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비법을 전수받고자 하였더니, 비위는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방법을 익히고 다시 오라고 하였다. 그는 아내의 베틀 밑에 누워서 왔다 갔다 하는 북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훈련을 하였다. 비위는 다시 작은 것이 크게 보이고 희미한 것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하여, 기창은 가는 털에 이를 묶어 창문에 매달아 놓고는 매일같이 바라보았다. 드디어 기창은 이를 쏘아 꿰뚫었는데, 그 묶어 놓은 털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이상의 2가지 고사에서 유래한 천양관슬(穿楊貫蝨)’은 신궁(神弓)과도 같은 뛰어난 활솜씨를 비유하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7) 손빈(孫臏): 손무(孫武)의 후손으로 제()나라의 병법가이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위()나라의 방연(龐涓)과 함께 귀곡 선생(鬼谷先生: 성은 왕[]이고 이름은 허[]로서, 낙양 부근에 있는 귀곡이라는 곳에 은거하여 지냈으므로 귀곡 선생이라 불렸다)의 문하에서 의형제를 맺고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손빈에게 뒤진다고 생각하여 그를 위나라로 불러들여 간첩죄를 씌워 월형(刖刑: 발 뒤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게 한다. 손빈은 다시 제나라로 와서 장군 전기(田忌)의 빈객(賓客)이 되었다. 위나라가 한()나라를 침공할 때, 손빈이 원군으로 출정하여 마릉(馬陵)의 싸움에서 대승을 한다. 손빈은 이때 적군을 안심시키기 위해 군사들이 밥을 해먹는 가마솥의 수를 처음엔 10만 개, 다음날엔 5만 개, 또 그 다음날엔 3만 개로 줄여갔다. 방연은 제나라 군대에 도망병들이 많다고 판단하고 추격에 나섰다가 매복해 있던 손빈의 군사들에게 대패하고 말게 된다.

8) 오기(吳起):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의 병법가(B.C.440?-B.C.381). ()나라 사람으로 노()나라, ()나라에서 벼슬한 뒤에 초()나라에 가서 도왕(悼王)의 재상이 되어 법치적 개혁을 추진하였다. 저서에 병법서 ?오자(吳子)?가 있다.

9) 오확(烏獲): 전국시대의 진()나라의 용사(勇士)로 천 균([3만 근, 1.8t])의 무게를 들어 올렸다고 함.

10) 경기(慶忌): ()나라의 왕자로 말보다도 빨라 하루에도 천 리를 갔다 올 수 있다고 한다.

참고: 힘에는 오획(烏獲), 날래기는 경기(慶忌), 용맹은 분육(賁育)”이라는 말이 있다. ?한서(漢書)?

11) 악의(樂毅): 전국시대 중기 B.C. 3세기 전반의 연()나라 무장(?-?).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고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치고 임치(臨淄)를 함락하여 창국군(昌國君)에 봉하여졌으나, 소왕이 죽은 후 혜왕(惠王)에게 쫓겨서 조나라로 도망하였다.

12) 기겁(騎劫): 전국시대 연()나라의 장수로 악의(樂毅)를 대신하여 장수가 되었으나 성격이 포악하고 우둔한 사람으로서 사병들을 마구 대하자 군대의 사기는 크게 떨어져서 제나라 장수 전단(田單)에게 대패하여 연나라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다.

13) 염파(廉頗): ()나라의 명장이다. ()나라는 장평(長平) 전투에서 처음엔 염파에게 밀리게 되었는데, 이에 진나라의 재상 범수(范雎)가 계책을 내놓았다. “진나라는 조나라의 장수 염파가 아닌 병법에 뛰어난 조괄(趙括)을 두려워 한다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이에 조나라의 장수는 조괄로 교체되었다. 조괄은 결국 진나라의 백기(白起)에게 패해 전사하였다. 조괄은 이론에만 밝았던 것이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서는 ‘‘야언(野言)1’에서 소개하였다.

출처는 ?상촌선생집? 40 잡저2이다. 예나 이제나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인재를 등용하는 일이란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과거시험에서 왜 공령시(功令詩: 과체시[科體詩])가 중요한가 궁금하였었는데, 한시의 경우 5언시냐 7언시냐, 절구냐 율시냐 배율이냐에 따라 운()자가 쓰이는 자리가 다르고, 다시 평기식(平起式; 평성으로 시작되는 시)이냐 측기식(仄起式: 측성[상성, 거성, 입성]으로 시작되는 시)이냐에 따라서 평성과 측성, 그리고 운자가 사용되는 자리가 다 각각 달라서, 거기에 맞게 시를 짓는다는 것은 바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능력과 맞먹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일례로 5언절구 평기식의 성조 배열을 보자.

○○○△△/△△△○◎/△△○○△/○○△△◎

(:평성, :측성, :)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이기는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