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전 /사상과 처세

226. 제갈량집 (諸葛亮集)

늘푸른 봄날처럼 2019. 3. 8. 04:24

226. 제갈량집 (諸葛亮集)

 

7배나 강한 위()나라를 상대로 치른 5차례의 전쟁에서 호각으로 싸운 천재 군사 제갈공명(諸葛孔明)의 병법서이다. 제갈공명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다. 유비 현덕이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로 초빙하고, ‘내 아들 유선은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황제에 올라야 한다라고 유언했을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 이 책은 산실된 제갈공명의 저서를 훗날 재편집한 것이다.

 

정사 삼국지제갈량전(諸葛亮傳)에 따르면, 공명의 저서로는 약 145,200자로 이루어진 제갈씨집(諸葛氏集)24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 산실되어 오늘날 전하는 것은 없다.

 

후대에 제갈공명의 저작이나 그에 관한 기록을 편집한 제갈량집이라는 이름의 책이 가끔 세상에 나타났다. 특히 명나라 때와 청나라 때에 걸쳐서는 왕사기(王士騏)무후전서(武侯全書)20, 양시위(楊時偉)제갈충무전서(諸葛忠武全書)10, 주린(朱璘)제갈무후집20권 등을 비롯해 이런 종류의 책이 10여 종이나 편집되었다.

 

그 가운데 내용 면에서 비교적 뛰어난 것이 청대의 장주(張澍)라는 사람이 편찬한 제갈충무후문집(諸葛忠武侯文集)이다. 이 책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아서 제목만 바꾼 것이 바로 제갈량집이다.

 

제갈량집은 문집 4, 부록 2, 고사(故事)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집은 공명의 저술이고, 부록은 공명에 관한 관계자의 문서이며, 고사는 공명에 관련된 기록으로서 공명의 인물됨과 활동의 전모를 알 수 있게 편집되어 있다.

 

여기서는 제갈량집의 문집에 수록된 것 가운데서 비교적 체계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는 편의16(便宜十六策)장원(將苑)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제갈공명의 용병론과 장수론, 정치론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위나라와 5차례나 싸운 공명의 용병술

 

제갈공명은 촉나라의 유비를 모신 승상이자 신들린 듯한 전략을 세워 적을 궁지에 몰아넣은 군사(軍師)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만들어 낸 이미지일 뿐, 실제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공명은 오히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신중한 전략으로 일관했던 사람이다.

 

공명은 유비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지를 받들어 촉나라의 전권을 장악했으며, 원정군을 이끌고 위나라와 5차례나 싸웠다. 그러나 5차례 모두 작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원정 도중에 병으로 쓰러져 오장원(五丈原)에서 숨을 거두었다. 결과론이 되겠지만 그는 실패한 전술가였다.

 

정사 삼국지를 저술한 역사가 진수(陳壽)는 그런 공명의 용병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해마다 군대를 일으켰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응변의 전략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비판은 전투의 경과를 더듬어 보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공명에게는 동정할 만한 점도 많다.

 

첫째, 그가 전권을 위임받은 촉이라는 나라는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국력도 약했다. 상대국인 위나라에 비하면 국토와 인구, 병력, 생산력을 비롯한 종합적인 전력에서 1 7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둘째, 촉나라로부터 위나라를 공략하려면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하므로 식량과 물자를 보급하기 힘들었다.

 

그 밖의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 보더라도 이 원정은 애당초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 손자는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명도 가능하다면 그런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왕 유비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 공명이 생각한 작전은, 이기지 못할 바에는 최악의 경우에도 지지 않을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결과를 보면 분명 이긴 싸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진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공명이 바라던 결과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모 아니면 도라는 위험한 승부수를 피하고 견실한 작전으로 일관한 것이 공명의 용병술이었다.

 

나아가 공명의 위대한 점은 10년 가까이 총력전을 펼치면서도 국정의 혼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리더십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공명의 정치에서 그 특징을 살펴보면, 엄격한 신상필벌 원칙을 실행했는데도 백성들에게서는 불평불만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평무사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한 처벌을 받아도 처벌받은 쪽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갈공명은 승상으로서 뛰어난 설득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 〈용병론

 

용병의 극의

 

작전 계획은 반드시 비밀로 해야 한다. 적을 공격할 때는 질풍처럼 나아가고,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해야 한다. 그리고 전투는 아래로 흘러내리는 급류처럼 단번에 결판을 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을 격파할 수 있다.

 

잘 싸우는 자는 감정의 동요가 없다. 완벽한 작전 계획을 세운 자는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원래 지혜로운 자는 싸움을 걸기 전에 완벽한 작전 계획을 세우고 승리를 확실하게 만든다. 그에 비해 어리석은 자는 승리할 전망도 없이 무작정 싸움을 걸고, 싸움이 벌어진 뒤에야 활로를 찾아내려 한다.

 

승자는 길에 맞추어 나아가려 하지만, 패자는 빠른 길을 택하다가 결국은 길을 잃고 만다. 패자가 하는 일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진퇴가 확실치 않다. 장수는 마땅히 위엄을 갖추어야 하고, 병졸은 제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군대는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둥근 돌을 언덕 위에서 굴리는 것과 같아서 어디에도 무리가 없고, 앞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 무너뜨릴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군대는 무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용병의 극의이다. 편의16

 

작전 지도(指導)의 비결

 

공격에 뛰어난 적을 상대할 때는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 반대로 수비가 강한 자를 공격할 때는 상대를 칠 단서조차 찾아내기 힘들다. 왜냐하면 공격에 뛰어난 자는 무기에 의지하려 하지 않고, 수비에 뛰어난 자는 성()에 의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높은 성을 쌓고 깊은 해자를 판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수비 태세를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견고한 갑옷을 입고 예리한 무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정예의 군대를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적이 수비를 견고하게 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약한 부분을 공략하면 된다.

적이 진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습 공격을 하면 된다.

적과 아군이 맞부딪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진을 치면 된다.

아군이 출동했는데 적이 움츠러들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좌우 양 날개를 공격하면 된다.

적이 여러 나라의 연합군일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그 주력을 쳐부수어야 한다.

 

지리적인 이점을 모르고, 때의 이점도 모른 채 적의 공격을 맞이하면 전력이 흐트러지고 만다. 편의16

 

 

 

교묘한 용병과 졸렬한 용병

 

한마디로 용병이라고는 하지만, 그 교졸(巧拙)에 따라 다음과 같은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최고의 용병

곤란을 미리 방지하고 결정적인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해결한다. , 미리 앞일을 읽고 손을 쓴다. 형벌의 규정은 있으나 그것을 실제로 적용할 필요가 없도록 일을 이끌어 간다. 이러한 용병이 최선이다.

 

2. 보통 용병

적을 앞에 두고 포진하고, 말을 달리고, 강궁을 쏘고, 한 걸음씩 적진을 압박해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적은 그 기세에 겁을 먹고 허둥대기 시작한다. 이것이 보통 용병이다.

 

3. 최악의 용병

장수가 스스로 선두에 서서 적진에 화살을 날리고, 눈앞의 승부에 집착하는 것이다. 적과 아군 모두에게 많은 사상자가 나면서도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이것이 최악의 용병이다. 장원

 

■ 〈장수론

 

장수의 그릇

 

같은 장수라도 그 기량에는 많은 차이가 난다. 속이 음험한 인간을 구별해서 위기를 미리 알아차리고 부하를 잘 통솔할 수 있는 장수는 10명을 거느리기에 적합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군무에 힘을 쏟고, 말도 신중하게 하는 장수는 100명을 거느리기에 적합하다.

굽은 것을 싫어하고 사려 깊으며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장수는 1,000명을 거느리기에 적합하다.

 

보기에도 위엄이 있고, 안으로는 강렬한 투지를 감추고 있으며, 또한 부하 장병의 노고와 기아, 추위 등을 잘 살피는 장수는 1만 명을 거느리기에 적합하다.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스스로 매일 게으름피우지 않고 수양하며, 신의가 두텁고 관용이 있어 어떤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장수는 10만 명을 거느리기에 적합하다.

 

백성을 사랑하고, 신의로써 이웃의 여러 나라를 굴복시키며, 천문과 지리, 인사(人事)에 만전을 기하고,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장수는 천하 만민을 거느리기에 적합하다. 장원

 

 

 

장수의 마음가짐 15개조

 

패배의 원인은 모두 적을 깔보는 데서 비롯한다. 따라서 장수가 군사 행동을 일으킬 때는 다음의 15개조를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1. () - 간첩을 활용한다.

2. () - 적의 동정을 파악한다.

3. () - 적이 아무리 강해도 기죽지 않는다.

4. () - 이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5. () - 상벌을 공평하게 한다.

6. () - 치욕을 잘 견딘다.

7. () - 배짱이 두둑하다.

8. () -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9. () - 인재를 등용한다.

10. () - 참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11. () - 겸허하게 행동한다.

12. () - 부하를 사랑한다.

13. () -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

14. () - 한계를 안다.

15. () - 나를 알고 적을 안다.

 

15개조를 마음에 담고 있으면 지지 않는다. 장원

 

장수의 결격 사유

 

장수에게는 8가지 결격 사유가 있다.

 

1. 탐욕에 눈이 어둡다.

2. 유능한 인물을 질투한다.

3. 참언을 받아들이고 아첨꾼을 가까이한다.

4. 적은 알지만 자기 자신은 모른다.

5. 우물쭈물하면서 결단을 못 내린다.

6. 주색을 밝힌다.

7. 사술을 즐기면서도 겁이 많다.

8. 말은 그럴듯하지만 태도에 진실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장원

 

 

 

 

 

■ 〈정치론

 

심모원려(深謨遠廬)

 

정치를 하는 자는 먼저 가까운 곳과 때를 잘 살피고, 그다음에 앞날을 내다본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먼 곳까지 내다보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서 발목이 잡히고 만다.

 

그러므로 군자는 상사의 직분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고, 남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하며,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당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중대한 문제는 원래 해결하기가 어렵고, 사소한 문제는 해결하기 쉽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면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 이익을 얻으려면 손해도 계산에 넣어야 하는 것이다. 성공을 꿈꿀 때는 실패할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9층 탑은 높기는 하나 탑을 지탱하는 토대를 흔들면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높은 곳을 올려다보는 자는 아래의 토대를 잘 살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앞에만 정신을 빼앗겨 후방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너무 지나치게 높은 곳을 지향하며 앞만 바라보면 실패하기 쉽다. 편의16

 

 

신상필벌(信賞必罰)

 

정치를 잘 해 나가려면 반드시 신상필벌의 원칙으로써 아랫사람을 대해야 한다.

 

왜 상이라는 제도를 두었을까? 공을 세우게 하기 위함이다. 왜 벌을 주는가? 그것은 법령 위반을 근절하기 위함이다.

상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벌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상을 탈 수 있는지를 알면, 병사는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할 때와 장소를 알게 된다. 어떤 경우에 벌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면, 악인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게 된다. 공도 세우지 않은 사람에게 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자칫 그런 사람에게 상을 주면, 공을 세운 사람은 불만을 품게 될 것이다. 죄 없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에게 벌을 주면, 성실하게 법을 지키는 사람의 원한을 사게 된다.

 

그렇다면 위에 서는 자가 실태(失態)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올바른 정치를 행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며, 절제하고 검약하며 사치를 멀리해야 한다. 또한 충직한 인물을 가려 재판관으로 삼아야 하고, 공평한 인물을 가려 상벌의 권한을 주어야 한다. 상벌의 규정과 실천을 명확히 하면 부하들은 기꺼이 명령에 따를 것이다.

 

길가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뒹굴고 있는데, 왕이란 자의 마굿간에는 살이 뒤룩뒤룩 찐 말이 묶여 있다고 하자. 이는 자신의 백성을 벌레처럼 취급하는 것과 같다. 사람 위에 서는 자는 부하를 이렇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먼저 상벌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공을 세운 자에게는 그 기준에 맞추어 상을 주어야 한다. 먼저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에 반한 자에게 벌을 준다. 이렇게 하면 부하들은 진심으로 굴복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사랑을 느끼며,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실천하게 된다. 편의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