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한국의 姓氏

신평호씨(新平扈氏, 보안,나주)

늘푸른 봄날처럼 2019. 3. 7. 12:29

    
    ■ 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 신평호씨(新平扈氏, 보안,나주) 
    
    ■  시조 : 호의(扈義)
    시조는 호의(扈義), 혹은 호원보(扈元甫)라고도 했다. 고려 건국에 공을세워 개국공신
    (開國功臣)에 책록되었고, 서기 927년(고려 태조 10년) 평장사(平章事)로서 
    공산(公山)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후백제 견훤군(甄萱軍)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한 
    태조 왕건을 신숭겸(申崇謙)과 함께 역전고투(力戰苦鬪) 끝에 구출하고 전사(戰死)하여 
    태사(太師)로 추증되고 희개(禧開)라 시호(諡號)를 받았다. 
    배현경,신숭겸, 복지겸, 홍유, 유금필와 함께 6태사로 불리운다.
    호의(扈義)의 맏아들 호철(扈哲)이 배천군(白川君)에 봉해져 배천을 본관으로 삼았었다. 
    그뒤 17세손 호종국(扈從國)이 고려 공민왕 때 숭록대부정당문학(崇祿大夫政堂文學) 
    수문전태학사(修文殿太學士) 상장군(上將軍)에 이어 대사도(大司徒)로 승진하고 
    개국공신에 책록, 신평군(新平君)에 봉해지고 식읍을 하사 받고 본관을 신평으로 하였다.
    - 시조 호의의 묘소는 황해도 배천군 태백산성에 있다.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호세립(扈世立, 1609 己酉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호정일(扈精一, 1566 丙寅生) : 사마시(司馬試) 광해군4년(1612) 식년시 이등(二等)
     호세륜(扈世倫, 1566 丙寅生) : 사마시(司馬試) 중종17년(1522) 식년시 삼등(三等)
     호인수(扈仁壽, 1566 丙寅生) : 율과(律科) 명종4년(1549) 식년시
    * 모두 4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무과 1명, 사마시 2명, 율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신평(新平)은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에 속해 있던 옛 지명이다. 
    본래 백제 사평현(沙平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평으로 고쳐서 혜성
    (槥城: 沔川)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인 태조 대에 이곳에 운주(運州)를 설치하고,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도단련사(都團練使)를 파견하였다. 1018년(현종 9) 홍주(洪州)에 
    예속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는 왕사(王師) 보우(普愚)의 고향이라 하여 홍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1368년에 다시 홍주로 강등되었으며, 1371년에 다시 홍주목이 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유지되었다. 조선 세종 때 진(鎭)을 두었으며 뒤에 홍양현(洪陽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914년 홍성군(洪城郡)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면천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이웃한 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면으로 개칭하였고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 지역이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신평호씨는
    1985년에는 총 326가구 1,362명, 
    2000년에는 총 597가구 1,85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