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복 ‘연당야유도’
■ 평양기생의 유별난 생리
잠시 평양 기생 이야기를 해보자. 문헌을 보건대, 평양 기생은 서울 기생과 생리가 사뭇
다른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역시 연구된 바 없다. 다만 평양 기생에게 상인들이 장사밑천을
날렸다는 이야기가 더러 전해져온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를
보면, 평양 기생에게 홀린 상인 이야기가 몇 있는데, 첫 번째 것을 들면 이러하다.
남쪽 지방의 한 상인이 배에 생강을 싣고 평양으로 떠났다가 평양 기생에게 홀려 생강을
몽땅 날리고 기생에게 쫓겨났다. 깨고 나니 이런 허망한 일이 없다. 그 심정을 시로 읊었다.
멀리서 보니 말(馬) 눈깔 같고,
가까이서 보니 고름주머니 같네.
두 볼에는 이(齒)가 하나도 없는데,
배 한 척에 실은 생강을 죄다 먹어 치웠네.
遠看似馬目, 近視如濃瘡
兩頰無一齒, 能食一船薑
눈치 빠른 독자들은 무엇을 두고 하는 소리인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평양 기생이 상인의 주머니를 터는 솜씨가 기가 막히지 아니한가.
‘이춘풍전’보다 더한 소비와 유흥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는 소설 ‘게우사’에서 볼 수 있다.
‘게우사’의 주인공은 무숙이다. ‘게우사’는 판소리 사설이 소설로 정착된 것이다. 대개 18세기이면
소설의 얼개가 완성되어 있었고, 현재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작품은 19세기 후반에 필사된 것이다.
먼저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 두자. ‘이춘풍전’이야 다 아는 소설이지만, 이 작품은
아직은 아무래도 낯설기 때문이다. 서울 장안의 갑부 무숙이는 사치와 유흥으로 사십 평생을
보낸 사람이다. 이런저런 놀음으로 평생을 보낸 터라, 이제 흥이 나지 않는다. 일품요리도 매일
먹으면 빈자(貧者)의 소찬(素饌)과 다름이 없다. 사치와 유흥도 일상이되면 전혀 즐겁지 않다.
무숙이는 최후로 한판의 놀음을 벌인 뒤 자신의 유흥과 오입을 끝내고 착실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 엉뚱한 선언에 말리는 왈짜, 찬동하는 왈짜간에 논란이 일고 과연 어디서 최후의 한판을 펼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 군평이란 왈짜가 평양 기생 의양이가 화개동(花開洞)에 기방을 열었는데,
천하절색이라고 하여 거기로 가기로 한다. 무숙이는 의양을 보자, 그 자리에서 반해 의양을 첩으로
들여앉히기로 결심한다. 의양이 거절하자, 무숙이는 집에 돌아와 절절한 연서(戀書)를 보내어
의양의 마음을 사로잡고, 마침내 그녀와 딴살림을 차린다.
평생을 유흥판과 오입으로 보낸 무숙이가 의양과 살림을 차리기로 한 뒤 벌인 일은 무엇인가?
우선 내의원(內醫院) 소속 기생인 의양을 면천(免賤)시키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인다.
그리고 의양과의 살림집을 호사스럽게 마련하고 오로지 돈 쓰는 일로 나날을 보낸다.
■ 십만냥 들인 유산놀음
의양은 이런 생활을 보내다가 무숙이 몰락하면 원망이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라 고민한다.
그래서 자기도 평양과 한양성에서 돈 잘 쓰는 인간을 보았지만, 당신처럼 굉장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비꼬면서 추켜세우자, 무숙이는 곧이듣고 자신이 얼마나 돈을
잘 쓰는 사람인지 자랑한다.
무숙이는 장악원의 악공(樂工)과 온갖 음악인을 다 불러 서울 근교의 경승지를 돌아다니며
십만 냥 이상을 들인 거창한 유산(遊山)놀음을 벌인다. 이어 의양이에게 자랑하기 위해 배를
새로 만들어 선유(船遊)놀음을 벌인다. 이 역시 판소리 광대를 비롯한 온갖 연예인을 다
불러모으고 유산놀음 이상 가는 비용을 들인다.
의양은 무숙의 아내와 몰래 모의한 뒤 그를 길들이기로 작정한다. 의양은 종 막덕이와 무숙의
친구 별감 김철갑 등의 협조로 무숙의 재산을 남김없이 빼돌린다. 이 과정에서 종 막덕이를 시켜
온갖 곳에서 무숙이의 빚을 요구하더라 하고, 그것을 빌미로 재산을 빼돌려 감춘다.
무숙은 결국 알거지가 되어 본가로 돌아가 품팔이 노동을 한다. 무숙의 품팔이 노동자 노릇은
결국 돌고 돌아 의양의 집에서 중노미 노릇을 하는 것으로 낙착된다. 여기서 무숙은 의양의 계획에
따라 온갖 수모를 겪는다. 최후에 의양이는 무숙의 친구 별감 김철갑과 짜고 무숙이 보는 데서
농탕질을 치는데, 무숙은 이 둘을 죽이고자 하여 비상을 푼 물을 끓인다.
무숙이 비상물을 달이는 것을 보고, 의양은 모든 일이 무숙을 개과천선시키고자 한 의도적인
각본이었음을 털어놓는다. 이하는 낙장이라 알 길이 없지만, 무숙은 아마도 새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가, ‘게우사’와 ‘이춘풍전’은 슬기로운 아내가 낭비적 남편을 길들인다는 동일한 주제에
유사한 플롯을 갖고 있다. 아내가 남편을 회개시킨다는 설정은 사실 비현실적인 것이다.
하지만 두 소설은 조선 후기 사회의 진실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두 이야기는 철저히 소비적 유흥적인 인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회개에는 관심이 없다.
아내가 남편을 회개시켰다는 소설의 설정에도 물론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이 있다면, 이춘풍과 무숙이 같은 소비적이고 유흥적 인간이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무숙이의 사치스런 모습을 보자. 무숙이가 기방에서 자신이 이제 화류계 출입을 그만두겠노라고
맹세하러 가는 길이다. 옷차림을 보자.
석양산로(夕陽山路) 제비같이 어식비식 들어올 제 호사(好事)치레 볼 양이면,
엽자(葉子) 동곳 대양중(大洋中)의 산호(珊瑚) 동곳 어깨 꽂고 외올망건 대모관자(玳瑁貫子)
쥐꼬리 당줄 진품 금패 좋은 풍잠(風簪) 이마 위에 숙여 띠고 갑주(甲紬) 보라 잔줄 저고리
백갑주 누비바지 백제우사 통한삼의 장원주 누비동옷 통화단 잔줄배자 양색단(兩色緞)
누비토수 순밀화장도(純蜜花粧刀) 학슬안경(鶴膝眼鏡) 당세포(唐細布) 중치막에
지품당띠 통대자 허리띠며 우단낭자 오색모초 고운 쌈지 당팔사(唐八絲) 끈을 달고
용두향에 대당전을 안 옷고름에 달아 차고 버들잎 본 고운 발 육날 미투리 수지 버혀 곱걸어 들먹이고…
지난호에서 별감을 다루면서 별감의 호사스런 복색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별감 특유의 옷만 빼면 의복과 장신구는 별반 다른 것이 없다. 달리 설명을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호사의 극을 달리는 옷치레다.
■ 계획 없는 돈 씀씀이
무숙이는 소비하는 인간이자 사치하는 인간이다. 다만 소비와 사치가 인간을 필연적으로
몰락시키는 것은 아니다. 몰락은 소비와 사치를 조절하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무숙이가 바로 그런 인간이다. 그는 돈을 쓰는 데 전혀 계획성과 절제가 없다. 의양이와
살림을 차리기로 했을 때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의양이를 기적(妓籍)에서 빼내는 것이었다.
의양이는 관기(官妓)고 약방(藥房)에 소속된 약방기생이니, 약방에 줄을 대고 돈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돈을 쓰는 데 전혀 계획성이 없다.
그는 “구실을 떼어도 긴한 곳을 생각하여 한 군데만 청을 해도 될 일”을 “헙헙하고 일 모르고
제 형세만 생각”하여 상의원(尙衣院) 침선비(針線婢)에게 300냥, 공조(工曹)의 행수 부행수
(行首 副行首·행수기생, 부행수기생)에게 400냥, 약방(內醫院) 장무서원(掌務書員)에게 500냥,
그리고 부제조(副提調) 대감(내의원 부제조)에게 1000여 냥, 이럭저럭 4000~5000냥을 들인다.
이렇듯 무숙이의 돈 쓰기는 요령부득이다.
무숙의 미친 마음 내두사 경영 없이 뒤끝을 생각잖고 돈쓰기만 위주하고 남만 좋게 하자 하니,
손톱 밑에 배접만 알고 뱃속 내종(內腫)은 몰랐으니, 무숙의 잡놈 지식을 금할 사람 뉘 있으랴?
매일 일용 쓰는 것이 삼사백을 넘어 쓰고 갖은 율속 풍유랑과 명기 명창 선소리며 소창 범백
각기 처하 하루 잠깐 놀고 나도 근천금씩 탕탕 쓰고, 일가 족속 노속 간에는 푼전일이 땀이 나고
담배씨로 간거리를 파니, 사론 공고 버서진 놈 무뢰잡탕 허랑객중에 무숙이가 어른이라.
돈을 써도 수가 있고 아니 써도 수가 있는데, 열 냥 쓸 데 천 냥 쓰고, 천 냥 쓸 데 한 냥 쓰니,
적실인심 무숙이고 불의 심사 무숙이라.
도무지 그는 돈을 쓰는 데 무슨 규모라고는 없다.
오로지 노는 일에 골몰하고 노는 일에만 돈을 물 쓰듯 쓴다.
■ 기생첩에게 선물한 맨션아파트
의양이를 기적에서 빼내자 곧 의양이와 살 집을 마련한다. 의양이가 머물고 있던
화개동 경주인(京主人) 집을 5000냥에 사들인다. 집치레를 훑어보자.
내사 지위 토역장이 청우정(聽雨亭?) 사랑 앞에 와룡(臥龍)으로 담을 치고 석수장이 불러
숙석(熟石)으로 면을 치고, 전후좌우 좋은 화계 모란 작약 연산홍과 들충 측백 전나무며,
금사화 죽연 포도화 측죽황 연브려(?) 있다. 옥분에 심은 매화, 녹죽 창송 천고절을 여기저기
심어놓고 사계 철죽 향일화며 난초 파초 좋은 종을 대분에다 심어 놓고, 향원 춘색 어린 곳에
화중군자 연화꽃 너울너울 넘노난 듯 홍도 벽도 일지매화 일단선풍 기이하고 치자 동백 석류분에
유자 화분 더욱 좋다. 사신 행차 부탁하여 오색 붕어 유리항에 백연조, 앵무조며 학두루미
나래 벌여 뚜루룩 길룩 길들이고, 완자담 일광문은 갖은 추병(?) 틀어 있고, 청삽사리 문 지키고
백수흑면 좋은 개는 천석 누리 노적 밑에 잠을 재워 길들이고 억대 황수 소 두 마리 양지 바로
마구 지어 그득하게 세워두고…
이게 마당치레다. 꽃과 나무, 그리고 애완동물―오색붕어, 백연조, 앵무새, 학두루미를 키우고,
거기에 당연히 집을 지킬 개와 농사를 지을 소를 기른다.
기생첩에게 주는 맨션아파트인 셈인데,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나는 여기서 무숙의 사치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백성들의 간절한 소원을 본다.
이것이 아마 백성들이 갖고 싶어한 이상적 주거였을 것이다. 이제 집안 내부를 돌아보자.
방안치레 차릴 적에 각장장판(角壯壯版) 당지도(唐紙塗)며 매화류 방장 개천도(開天圖)를 항상
보기 좋게 걸어두고 대모병풍(玳瑁屛風) 삼국 그림 구운몽도(九雲夢圖) 유향도며 관동팔경
(關東八景) 좋은 그림 각병에다 그리고 화류평생 금패서안 삼층들이 각게수리 오시목 갖은 문갑
자개함롱 반다지 대모책상 산호필통 사서삼경(四書三經) 온갖 책을 적성권축(積成卷軸) 쌓아 두고,
돈피방장(?皮房帳) 호피방장(虎皮房帳) 왜포 청사 모기장을 은근히 드리우고 평생 먹을 유밀과며
평생 쓸 당춘약(唐春藥)과 진옥 새긴 별춘화도(別春畵圖) 청강석(靑剛石) 백강석(白剛石)과
산호 호박 청백옥 모두 들여 온갖 가화(假花) 칠보 새겨 유리 화류장을 꾸며 내어 보기 좋게 놓아 주고
천은(天銀) 요강 순금 타기(唾器) 백동(白銅) 재떨이 백문 설합 새별 같은 대강선의 철침 퇴침
대안석의 대체경(大體鏡) 소체경(小體鏡)에 오도독 주석(朱錫) 놋촛대에 양초 박아 놓아두고
유리 양각등을 달고 홍전(紅氈) 백전(白氈) 몽고전(蒙古氈)과 진지 보초 모탄 …
각색 금침 수십 벌과 십성진품(十成珍品) 갖은 패물 좋은 모물(毛物) 걸어놓고 …
집안을 각종 그림과 책과 문방구, 이부자리 등 소소한 생활 제구로 가득 채우고 있다.
물론 최고급이다. 오죽했으면 침이나 가래를 뱉는 타구조차 순금으로 만들고(純金 唾器),
요강조차 은으로 만들었을까 (天銀 요강). 그뿐이랴. 오입쟁이 잡놈답게 중국에서 수입한
최음제(평생 쓸 당춘약)와 포르노그라피―춘화(春畵·진옥 새긴 별춘화도)까지 구비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산삼 녹용 부경 잡탕 경옥고(瓊玉膏) 팔미환(八味丸) 사물탕(四物湯) 쌍화탕(雙和湯)을
장복하고, 은금보화 비단 포목 구산(丘山) 같이 쌓아놓고 사절 의복 삼시벌에
멀미증이 절로 나고, 고량진미 어육 포식 보기 심상 쌓였으니,
씀바귀 나물 시래기 된장덩이 산채나물이 새맛이라
의식이 그립잖고 근심 걱정 없어지니 석숭 의돈 부러할가.
보약과 정력제가 가득하다. 거기에 고량진미까지 푸짐하다.
이것은 판소리의 과장적 수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에 입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대인이 ‘호사’로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이고,
이것은 아마도 당시 부호들의
실제 생활과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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