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조선의 뒷마당

5. 별감(別監)-<3>

늘푸른 봄날처럼 2019. 2. 19. 23:17



    정조(正祖)의 화성행궁(華城行宮)을 그린 의궤 ‘원행을묘반차도(園行乙卯整理儀軌)’
    그림의 중앙 ‘좌마’라고 쓰인 곳이 정조대왕의 자리이고, 전후좌우를 홍의(紅衣)를 
    입은 대전별감(大殿別監)을 비롯하여 장용영(壯勇營) 군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  네 곳의 오입쟁이 

‘한양가’ 본문을 읽어보면 서울 시정의 놀이 중에서 승전놀음을 으뜸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제 유흥계의 총아 별감이 주최하는 승전놀음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승전놀음에 대해 ‘한양가’ 말고는 다른 기록을 본 적이 없다. 이병기 선생의 ‘가람일기’에서 
어떤 노인에게서 승전놀음에 대해 들었다는 간단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정작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한 줄도 써놓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한양가’가 승전놀음에 관한 유일한 기록일 것이다. 
‘승전(承傳)’이란 왕명을 전달한다는 뜻이고, 이것은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별감의 고유한 업무다. 
그러나 ‘승전’이 ‘놀음’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승전이란 게 별감이 하는 일이니, 
별감을 대신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승전놀음을 별감놀음이라고도 부르니 말이다. 
‘한양가’에 묘사된 승전놀음은 기본적으로 연예를 관람하는 놀이다. 여기서 연예를 제공하는 부류는 
가객(歌客), 금객(琴客)과 기생이다. 물론 기생이 가장 수가 많고 또 중요하다. 별감들은 기생을 대거 
동원하여 거창한 놀음판을 벌였던 것이다. 대개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기생을 불러 놀음판을 벌일 수 
있으나, 별감의 경우는 좀 유별났던 것 같다. 기생과 별감의 관계에 대해 먼저 간단히 알아보고 
승전놀음에 대해 살펴보자. 
‘사처소(四處所) 오입쟁이’란 말이 있다. 네 곳의 오입쟁이란 뜻인데, 조선후기 서울의 기생이 소속되어 
있는 관청 넷을 말하는 바, 내의원(內醫院) 혜민서(惠民署) 상의원(尙衣院) 공조(工曹)가 그것이다. 
내의원의 기생이란 원래 의녀(醫女)다. 의녀의 소임을 맡으면서 동시에 기생 노릇을 했던 것이다. 
혜민서 역시 마찬가지다. 상의원은 원래 임금의 의복과 대궐 안의 보물을 관리하는 곳이다. 상의원의 
침선비(針線婢)는 원래 임금의 의복을 짓는 구실을 맡아 하는데, 동시에 기생을 겸업한다. 공조에도 
군사들의 의복을 짓는 침선비가 있어 이들 역시 기생의 역할을 하였다. 이 중 내의원의 기생을 특별히 
약방기생(藥房妓生), 상의원의 기생을 상방기생(尙房妓生)이라 한다. 
원래 이들은 기생이 아니었다. 조선전기에는 따로 기생이 있었으며, 기생은 모두 장악원에 소속되어 
있었다. 물론 이들을 기생처럼 부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였으나 이들이 기생을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 장악원이 붕괴되자, 이들이 기생을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사처소 기생의 성분은 다양하다. 왕실의 잔치에 지방의 기생이 올라온다. 이들은 잔치를 치르고 
내려가기도 하지만 서울에 머물기도 한다. 물론 서울 자체에서 충당되는 기생도 있다. 어쨌거나 
서울의 기생은 출신은 다양하지만, 일단 이 네 곳에 소속된다. 이들의 숙식 문제를 해결해주고, 기생의 
영업권을 갖는 자가 기부인데, 기부는 별감, 포도군관(捕校), 승정원 사령(使令), 의금부 나장(羅將), 
궁가(宮家)나 외척가의 겸인(탙人,청지기), 무사(武士)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종 때 대원군이 
집정하자, 의금부 나장과 승정원 사령은 창녀의 서방이 되는 것만 허락하고 관기(官妓)의 서방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처소 기부의 내력이다. 
사처소 기부 중에서도 가장 끗발이 있는 것이 바로 별감이며, 
별감 중에서도 대전별감이 으뜸이었다. 
기생은 ‘조(操)’라는 것이 있어 양반이나 부호의 명을 거스를 수는 있어도 
대전별감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승지나 참판 등 고위관료 외에는 기생에게 ‘해라’를 못하고 
모두 ‘하게’를 하였는데, 유일하게 액정서의 사알이나 사약은 ‘해라’를 할 수 있었다. 
별감과 기생은 이처럼 특수한 관계에 있었다. 
승전놀음에서 별감이 수많은 기생을 불러올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 화려한 잔치 마당 승전놀음
이제 승전놀음 이야기를 해보자. 승전놀음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유득공이 쓴 
‘유우춘전(柳遇春傳)’에 그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보인다. ‘유우춘전’의 주인공 유우춘은 해금의 
명수다. 이 작품은 높은 예술적 경지를 추구하는 유우춘과 값싼 음악을 요구하는 몰예술적 취향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 수작이다. 몰예술적 취향의 대표적인 경우로 별감이 나온다. 
임형택 교수의 번역을 보자. 
또 가령 춘풍이 태탕하고 복사꽃 버들개지가 난만한 날 ‘시종별감’들과 오입쟁이 한량들이 
무계의 물가에 노닐 적에 침기(針妓, 침선비) 의녀(醫女)들이 높이 쪽찐 머리에 기름을 자르르 
바르고 날씬한 말에 홍담요를 깔고 앉아 줄을 지어 나타납니다. 놀음놀이와 풍악이 벌어지는 한편에 
익살꾼이 섞여 앉아서 신소리를 늘어놓지요. 처음에는 요취곡(군악 계통의 곡조)을 타다가 
가락이 바뀌어 영산회상이 울립니다. 이때에 손을 재게 놀려 새로운 곡조를 켜면 엉켰다가 다시 
사르르 녹고, 목이 메었다가 다시 트이지요. 쑥대머리 밤송이 수염에 갓이 쭈그러지고 옷이 찢어진 
꼬락서니들이 머리를 끄덕끄덕, 눈깔을 까막까막하다가 부채로 땅을 치며 ‘좋아, 좋다!’ 하며, 
그 곡이 가장 호탕한 양 여기고 오히려 하잘것없는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유우춘의 말에 의하면, 이들은 과연 예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이다. 
이것이 과연 사실에 가까운지는 의문이나 여기서 시종별감 오입쟁이들이 침기 의녀 등 기생을 불러 
풍악을 잡힌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이것은 다음에 언급할 승전놀음의 원형으로 보이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뒤의 ‘승전놀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자료의 부족으로 더 이상 상고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이제 본문을 보도록 하자. 

구경 가자 구경 가자 승전놀음 구경 가자
북일영 군자정에 좋은 놀음 벌였구나
눈빛 같은 흰 휘장과 구름 같은 높은 차일
차일 아래 유둔 치고 마루 끝에 보계판과 아로새긴 서까래에
각 영문 사촉롱을 빈틈없이 달아놓고
좁쌀구슬 화초등과 보기 좋은 양각등을 차례 있게 걸어놓고
난간 밖에 춘화 가화 붉은 비단 허리 매어
빙문 진 유리병에 가득이 꽂아 놓고
각색 총전 몽고전과 만화등매 담방석에
백통 타구 옥타구며 백통 요강 은재떨이
왜찬합 당찬합과 아로새긴 교자상과
모란병풍 영모병풍 산수병풍 글씨병풍
홍융사 구멍 뚫어 이리저리 얽어매고 

북일영은 경희궁 북쪽에 있던 훈련도감의 분영이다(군자정은 미상). 먼저 이 놀이판의 차림새를 보자. 
원래 사치스러운 별감의 놀이인 만큼 놀이판의 차림도 호사스럽다. 먼저 휘장을 치고 햇볕을 가리느라 
차일을 높이 쳤다. 그 아래에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자리인 유둔(油芚)을 깔고, 마루 끝에 보계판
(補階板)을 깔았다. 보계판은 좌석을 넓히기 위해 마루에 덧댄 판목을 이르는 말이다. 
아로새긴 서까래는 아마도 단청을 올린 서까래일 것이고, 거기에 각 영문(營門)에서 가져온 
사촉롱(紗燭籠)과 양각등(羊角燈)을 곳곳에 달아매었다. 사촉롱은 여러 빛깔의 비단을 겉에 씌운 
등롱이다. 등롱이란 대나무나 철사로 틀을 만들고 거기에 종이나 비단으로 겉을 바른, 들고 
다닐 수 있는 등이다. 양각등은 양의 뿔을 불에 쬐어 투명할 정도로 얇게 편 뒤에 그것을 등롱에 
씌운 등이다. 화초등은 아마도 꽃모양으로 만들거나 꽃모양을 그린 등인 듯하다. 
다만 이 앞에 붙어 있는 좁쌀구슬과 화초등의 관계가 어떤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온갖 등을 단 뒤에 꽃으로 장식을 더한다. 춘화 봄꽃과 가화, 
즉 조화를 붉은 비단으로 묶어 빙문(氷紋)이 진 유리병에 꽂아둔다. 유리병의 무늬가 얼음무늬와 
같다는 것으로 곧 유리병에 꽃을 꽂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이 앉을 자리도 호사스럽기 짝이 없다. 
‘각색 총전 몽고전과 만화(滿花)등매 담방석’은 관람하는 사람들이 앉을 방석 종류를 늘어놓은 것이다. 
총전과 몽고전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전(氈, 짐승의 털로 짠 피륙)으로 만든 따뜻한 
고급 방석이다. 만화는 만화석(滿花席), 곧 꽃무늬를 넣어서 짠 왕골 방석이고, 등매는 가장자리를 
검은 헝겊으로 두른 돗자리를 말한다. 담방석은 짐승털로 짠 방석이다. 이렇게 호사스런 자리를 깐 다음, 
백동(白銅)과 옥으로 만든 타구와 요강과 은재떨이를 갖추었다. 
이런 잔치에 먹는 즐거움이 없을 수 없다. 교외에 나왔으니 당연히 먹을 것은 찬합에 담아 온다. 
일본에서 수입한 왜찬합(倭饌盒)과 중국제 당찬합(唐饌盒)을 쓰고, 번듯한 교자상에 올린다. 
잔치상 뒤로는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병풍, 새를 그린 영모병풍, 산수화를 그린 산수병풍과 붓글씨로 된 
글씨병풍을 두르되, 혹 넘어질까 보아 구멍을 뚫어 홍융사로 묶어둔다. 
이제 놀이판에서 음악을 제공하는 연예인을 볼 차례다. 

금객 가객 모였구나. 거문고 임종철이
노래의 양사길이, 계면의 공득이며 

조선후기 도시민의 유흥적 욕구가 팽창하면서 음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바, 이 요구에 의해 
노래와 거문고 연주를 전문적으로 하는 민간의 직업 음악인이 출현했는데, 이들을 각각 가객(歌客), 
금객(琴客)이라고 불렀다. 거문고의 명인 임종철, 노래의 명인 양사길, 그리고 계면조의 명인 공득이는 
아마도 이 시기의 실제 인물이었을 것이다. 악기의 준비가 끝났으면, 이 놀이판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주인공, 곧 기생이 온갖 치장을 하고 차례로 들어온다. 

■  백만교태 피우며 들어서는 기생들 


각색 기생 들어온다. 예사로운 놀음에도
치장이 놀랍거든 하물며 승전놀음
별감의 놀음인데 범연히 치장하랴  
  
별감은 기생을 지배하는 기부 중에서도 으뜸가는 존재다. 별감의 놀음, 승전놀음이기에 
기생의 치장은 범연하지가 않다. 이제 머리 부분의 꾸밈부터 보자.

어름 같은 누런 전모, 자지갑사 끈을 달고
구름 같은 허튼머리 반달 같은 쌍얼레로
솰솰 빗겨 고이 빗겨 편월(片月) 좋게 땋아 얹고
모단 삼승 가리마를 앞을 덮어 숙여 쓰고
산호잠(珊瑚簪) 밀화(蜜花)비녀 은비녀 금봉차(金鳳釵)를
이리 꽂고 저리 꽂고
당가화 상가화를 눈을 가려 자주 꽂고 

기생의 머리 위에 쓴 것이 전모(氈帽)다. 전모는 신윤복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기생 그림에 
자주 나오는 것이다. 대나무로 우산처럼 살을 만들고 기름을 먹인 종이로 위를 바른다. 
‘어름 같은 누런 전모’는 기름을 먹인 누런 유지가 얼음처럼 투명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전모를 자지갑사(紫地甲紗) 끈으로 턱 밑에서 맨다. 자지갑사는 자줏빛의 갑사인데, 
갑사는 품질이 좋은 비단을 말한다. 전모 밑에는 당연히 머리가 있다. 구름같이 흩어진 머리를 
얼레빗으로 빗는다. 얼레빗은 머릿결을 고르기 위한 발이 굵은 빗이다. 
그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편월(片月) 좋게’란 말은 미상이지만, 
어쨌든 머리를 잘 빗어 땋아 올린 모양의 묘사다. 
‘모단(毛緞) 삼승(三升) 가리마’에서 ‘가리마’는 기생들이 쓰는 일종의 모자다. 
유득공은 ‘경도잡지’에서 내의원의 약방기생은 검은 비단으로 만든 가리마를 쓰고, 
나머지 기생은 검은 베로 만든 가리마를 쓴다고 하였다.
 ‘모단 삼승’에서 ‘삼승’이 지시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
‘모단’은 두툼한 비단을 말한다. 여기에 동원된 기생은 주로 약방기생들이다. 
그리고 산호로 만든 잠과 밀화, 즉 호박으로 만든 비녀, 은비녀, 금봉차를 꽂았다. 
금봉차는 금으로 만들되 봉황을 새긴 호사스런 비녀다. 
그러고 나서 중국제 조화(唐假花)와 상가화(?)를 머리에 몸에 꽂는다
(宋申用은 상가화를 ‘常假花’로 표기하고 있으나, 뜻은 밝히지 않고 있다). 
이제 기생들의 옷차림을 볼 차례다. 

도리불수 모초단을 웃저고리 지어 입고
양색단 속저고리 갖은 패물 꿰어 차고
남갑사 은조사며 화갑사 긴치마를
허리 졸라 동여 입고
백방수주 속속것과 수갑사 단속것과
장원주 너른바지 몽고삼승 것버선과
안동상전 수운혜를 맵시있게 신어두고
백만 교태 다 피이고 모양 좋게 들어온다 

옷치레다. 웃저고리, 속저고리, 긴치마, 속속것, 단속것, 바지, 버선, 신발의 순으로 묘사하고 있다. 
웃저고리는 도리불수 모초단으로 지었다. 도리불수는 앞서 설명한 바 있다. 
모초단(毛?緞)은 질이 좋고 무늬가 아름다운 비단이다. 이것으로 웃저고리를 지어 입었다. 
속저고리를 지은 양색단은 앞에서 말한 대로 씨줄과 날줄의 색을 달리해 짠 비단이다. 
이 양색단으로 지은 속저고리에 갖은 패물을 찬다. 
긴치마는 남갑사(藍甲紗) 은조사(銀條紗) 화갑사(花甲紗)로 지은 것이다. 
남갑사는 남색의 갑사일 터이고, 은조사(銀條紗)는 중국에서 수입한 여름 옷감용 비단이다. 
화갑사는 꽃무늬가 있는 비단일 터이다. 긴치마 안에 속속곳과 단속곳을 입는다. 
속속곳은 여자의 맨 속에 입는 속옷이다. 다리통이 넓고 밑이 막힌 것이다. 
이것을 백방수주(白紡繡紬)로 지어 입는다 했는데, 아마도 ‘백방사주(白紡絲紬)가 아닌가 한다. 
백방사주는 흰 고치에서 켠 실로 짠 비단이다. 단속것은 속속것 위에 덧입는 속곳이다. 
수갑사(繡甲紗)로 지어 입는다 했으니, 수놓은 갑사로 지은 것인가 한다. ‘장원주 너른바지’의 
너른바지는 단속것과 같되, 밑이 막힌 여자 바지라고 한다. 이것을 단속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필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보통 명주붙이로 만드는데, 
장원주(壯元紬) 역시 명주붙이의 한 종류일 것이다. 
‘몽고삼승(蒙古三升) 것버선’이란 몽고삼승으로 만든 것버선인 바, 
것버선은 솜버선 겉에 신는 버선을 말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신발이다. 
수운혜(繡雲鞋)는 수를 놓은 운혜, 곧 여자의 가죽신인데, 
앞의 코 부분과 뒤축에 구름 무늬가 있기 때문에 운혜라고 한다. 
안동상전(安東商廛)은 ‘안국동의 상전(商廛)’으로 
안국동에 자리잡고 있던 시전(市廛)으로 여겨진다. 
기생을 지배하는 별감의 놀음이니 화려무비한 차림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