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오자 (吳子)
220. 오자 (吳子) / 저작자 오기(吳起)
BC 38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손자』와 나란히 평가받으며 정치가로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한 오기의 병법서이다. 전국시대 초기에 초나라의 재상으로 눈부신 업적을 남긴 오기가 초나라의 신하가 되기 전, 곧 위(魏)나라의 장군이었을 때 섬기던 문후(文侯)와 그의 아들 무후(武侯)에게 병법을 설명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원래는 48편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도국(圖國)」, 「요적(料敵)」, 「치병(治兵)」, 「논장(論將)」, 「응변(應變)」, 「여사(勵士)」 등 6편만 전한다.
『손자』가 노자의 영향을 받은 병법서라고 한다면, 『오자』는 법가 사상의 흐름에 속하는 병법서이다.
『오자』는 내용이나 사상적인 무게로 보아서는 『손자』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지만, 저자인 오기의 행적은 손자보다 화려하다.
오기는 젊은 시절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曾子)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점차로 법치주의에 기초한 부국강병을 꾀하는 법가 사상으로 기울어져 실천적인 정치에 몸을 담게 되었다.
처음에는 공자의 출신지인 노나라에서 일을 했는데, 노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그의 아내가 제나라 출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자 오기는 아내를 죽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평판이 나빠져 노나라에서 쫓겨난 뒤 위나라로 도망쳐 문후(BC 445~BC 396 재위)에게 등용되었고, 전선 기지인 서하(西河)의 태수가 되어 공을 세웠다. 그러나 무후가 집권한 뒤 정적(政敵)들의 모함으로 실각하고 초나라로 망명했다.
초나라 도왕(悼王, BC 401~BC 381 재위)의 눈에 들어 재상이 된 오기는 스스로 병사를 이끌고 나가 많은 전공을 세웠고, 왕족들의 사적인 권한을 제한하는 중앙집권 정책을 강행해 초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 때문에 왕족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고, 결국 도왕이 세상을 떠난 후 암살되고 말았다.
■ 「도국편(圖國篇)」
『오자』의 첫머리에는 오기가 문후와 처음 만났을 때의 경위를 밝히고, 이어서 국정의 기본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먼저 나라를 화합한 뒤에 대사를 도모한다
옛날, 나라를 잘 다스렸던 군주들은 반드시 먼저 백성을 교화하고 만민과 친화를 이루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인화 단결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군주가 각별히 유념하고 있어야 할, 단결을 해치는 4가지 불화(不和)가 있으니, 바로 ‘나라의 불화’, ‘군대의 불화’, ‘부대의 불화’, ‘전투의 불화’이다. 국내가 평온하지 못할 때 군대를 내보내서는 안 된다. 군대가 화목하지 못할 때 출전시켜서는 안 되고, 부대가 화목하지 못할 때 전투를 시작해서도 안 된다. 전투에 임해서 아군이 일사불란하지 못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영명한 군주는 먼저 나라의 화합을 이룬 뒤에 대사를 도모했던 것이다.
또한 대사를 도모하기 전에는 반드시 조상의 영전에 고하고, 귀갑점(龜甲占)각주1) 으로 천시(天時)를 살펴 길한 징후가 나타나면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은 군주가 자신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며 희생을 아낀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한 뒤에 전쟁에 임한다면 병사들은 용감히 싸우다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인재가 없으니 나라의 앞날이 어둡다
하루는 위나라 무후가 국사를 논의하다가 신하들의 생각이 자기만 못한 것을 알고 득의양양했다. 그것을 보고 오기가 말했다.
“옛날 초나라의 장왕(莊王)이 국사를 논하는데, 신하들의 생각이 모두 왕에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조회가 끝난 뒤 장왕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지라 신공(申公)이라는 사람이 무슨 일로 심사가 불편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장왕이 말하기를, ‘성인이나 현자를 곁에 두어야 패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내 곁에는 인재가 없으니 우리나라의 앞날이 어두워서 그런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장왕은 신하의 무능함을 탄식했는데, 왕께서는 오히려 기뻐하고 계시니 소신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무후는 무안해했다.
이 편에는 이 밖에도 국정의 기본과 내정의 강화, 전쟁의 분류, 민심의 파악에 관한 문답이 들어 있다.
■ 「응변편(應變篇)」
임기응변이라는 말로 변화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
소수로 다수를 이기려면
“아군의 전력이 약할 때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가?”
무후의 물음에 오기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형을 활용해야 합니다. 평탄한 장소는 큰 부대에 유리하고, 좁은 곳은 작은 부대에 유리합니다. 예부터 이르기를 자신보다 열 배 강한 적과 싸우려면 좁은 길이나 험악한 산악 지형, 좁은 계곡에서 싸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은 병력이라도 좁은 지형을 선택해 기습 작전을 펴면 제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불리한 지형에서 강한 적을 만났을 때
“불리한 지형에서 강한 적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후의 물음에 오기는 이렇게 대답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퇴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맞닥뜨려 피할 수 없을 때는 우선 시끄러운 소리로 적을 놀라게 한 뒤, 적이 당황하는 틈을 타서 공격을 가해 적이 혼란에 빠지면 총공격을 감행해야 합니다.”
이 밖에 「요적편(料敵篇)」에서는 적의 실태를 분석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다루었고, 「치병편(治兵篇)」에서는 통솔의 원칙, 「논장편(論將篇)」에서는 지도자론에 관해 논했으며, 「여사편(勵士篇)」에서는 오기가 어떻게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에 관한 일화를 기록했다.
□ 책 속의 명문장
人輕戰 / 인경전
사람이 싸움을 가벼이 여기도록 하라는 말이다. 오기는 ‘사경(四輕)’을 용병의 기본이라고 했다. ‘사경’이란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기게 하고, 말이 수레를 가벼이 여기게 하며 수레가 사람을 가벼이 여기게 하고, 사람이 싸움을 가벼이 여기게 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자발적으로 싸울 수 있는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 「치병편」
一死賊伏於曠野 千人追之 莫不梟視狼顧 / 일사적복어광야 천인추지 막불효시랑고
죽음을 각오한 도적 1명이 들판에 숨어 있으면 1,000명이 그를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비록 적은 1명뿐이지만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를 쫓는 1,000명이 두려움에 떨게 된다. 오자는 아무런 전공을 세우지 못한 병사 5만으로 부대를 편성해 큰 공을 세웠다. 이 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강조한 것이다. - 「여사편」
人有長短 氣有盛衰 / 인유장단 기유성쇠
사람에게는 저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고, 원기가 왕성할 때와 약할 때가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을 늘 고정된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그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다. - 「여사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