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한국의 姓氏

평해 황씨(平海 黃氏)

늘푸른 봄날처럼 2019. 2. 3. 07:14

    
    ■ 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 평해 황씨(平海 黃氏) 
    
    ■ 평해 황씨(平海 黃氏) 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때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 황온인(黃溫仁)을 1세조로 한다.
    ◎관향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시조 -황온인 (黃溫仁)
    ◎주요 집성촌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덕산리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 
    함경북도 명천군 상우남면 고성리
    ◎주요 인물 -황희석, 황여일, 황선신, 황종률, 황필구, 황산덕, 황대봉, 황병우, 황병태, 
    황윤기, 황수관, 황병서 황병일, 황상민, 황선홍, 황영조, 황찬성
    ◎인구(2000년) -137,150명 (61위)
    ●역사
    평해 황씨(平海 黃氏)는 고려 때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역임한 황온인(黃溫仁)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기원
    중국 후한 때, 육종(陸終)의 후예(後裔) 중에 해(海), 락(洛), 호(湖) 3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둘째인 황락(黃洛)은 중국 후한 유신이었다고 한다.
    서기 28년(후한 광무제 건무 4년, 신라 유리이사금 5년) 구대림(丘大林, 평해 구(丘)씨의 시조)
    장군과 함께 교지국(交趾國, 지금의 베트남)에 사신으로 가던 길에 풍랑을 만나 길을 잃고 
    망망대해를 헤매던 중, 신라의 동북 해변인 평해읍 월송리 굴미봉(崛尾峰) 남쪽 기슭 월송봉
    (越松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후 황락(黃洛)은 신라에 귀화함으로써 평해에 정착하여 
    황장군으로 불리며 살았으며, 한국 황씨(黃氏)의 도시조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평해(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越松) 지역에는 황장군의 묘가 있고, 
    같이 신라에 온 구(丘)장군이 살았다는 곳을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른다.
    후대로 갑고(甲古), 을고(乙古), 병고(丙古) 삼형제가 있었는데, 
    첫째 갑고는 기성군(箕城君, 현재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둘째 을고는 장수군(長水君, 현재의 전라북도 장수군)
    셋째 병고는 창원백(昌原伯,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으로 봉해졌다는 전설이 있다.
    ●인물
    황희석 : 조선의 개국공신
    황현(黃鉉, 1372년 ~?) : 조선 전기의 문신. 
    고려 시중 황유중(裕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제학 황근(瑾)이고, 아버지는 공조판서 
    황유정(有定)이다. 1393년(태조 2) 춘장문과(春場文科)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으로서 중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경승부소윤
    (敬承府少尹)에 초배(超拜)되었다. 태종과 세종대에 대사성을 지냈으며, 1428년(세종 10) 
    인수부윤(仁壽府尹)을 거쳐 1429년 행성균대사성(行成均大司成)을 겸직하였다. 
    1430년 변계량(卞季良)과 함께 행성균대사성으로서 문과초시 때 강경(講經) 중 두가지 
    시제(試題)만을 뽑아 제술(製述)할 것을 건의, 실시하게 하였다. 그러나 유학자들이 여전히 
    초록집(抄錄集)에만 의존하고 경학(經學)을 경시한다는 건의에 따라 그 뒤 다시 과거에서 
    경서강독(經書講讀)이 시행되었다.
    황여일(黃汝一, 1556년 ~ ?) :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회원(會元), 호는 해월헌(海月軒)·매월헌
    (梅月軒). 평해 출신. 세충(世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연(璉)이며, 아버지는 유학(幼學) 
    응징(應澄)이다. 1576년(선조 9)에 진사가 되고 1585년 개종계별시문과(改宗系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8년 검열이 되었는데, 하번사관(下番史官)임에도 불구하고 출입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1594년 형조정랑이 되고 곧 도원수 권율(權慄)의 종사관으로 내려갔는데, 
    얼마 뒤 도원수의 허락을 받고 일시 귀가하여 도원수와 함께 추고(推考)당하였다.1598년 
    사서에 이어 장령이 되고, 이듬해 장악원정을 역임하였다. 1601년 예천군수가 되고 1606년 
    전적을 역임, 1611년(광해군 3) 길주목사, 1617년 동래진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평해의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조천록(朝天錄),해월집 14권 7책이 있다.
    ●본관
    평해(平海)는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평해읍 일대의 지명이다. 고구려 때 근을어현(斤乙於縣)
    이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평해로 고쳐 유린군(有隣郡)의 영현으로 하였다.고려 현종 때 
    예주(禮州)의 영현이 되었고, 1172년(명종 2)엔 지군사로 승격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울진군 평해면이 되었고, 1963년에는 울진군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1980년 평해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평해황씨는
    1985년에는 총 30,200가구 124,072명, 2000년에는 
    총 43,207가구 137,15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숙신옹주(태조의 서녀)사위 황계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