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최앵앵대월서상기 (崔鶯鶯待月西廂記)
314. 최앵앵대월서상기 (崔鶯鶯待月西廂記)
저작자 왕실보(王實甫)
126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줄여서 『서상기』라 한다. 봉건사회에서 피어난 화사한 연애담으로, 중국 희곡문학의 걸작이다. 제목은 앵앵이 군서(君瑞)에게 보낸 시의 한 구절인 ‘달을 기다리는 서상(西廂) 아래’에서 따온 것이다. 서상은 군서가 머물던 곳이다.
저자는 왕실보인데, 전 5본 가운데 제1본부터 제4본까지가 그의 창작이고, 나머지는 관한경(關漢卿)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왕실보의 이름은 덕신(德信)이고, 실보는 자(字)이다. 대도(大都, 지금의 북경) 사람으로, 원나라 초기의 작가였다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작품의 제작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대덕(大德) 연간(1297~1307)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의 근원은 당나라의 원진(元縝)이 지은 『회진기(會眞記)』[『앵앵전(鶯鶯傳)』이라고도 한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작품에서 군서는 ‘그녀처럼 뛰어난 여자는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하면서 앵앵을 버리고 만다. 작품은 큰 인기를 누렸으나, 그 기만적인 대사가 큰 결점이었다. 이 이야기는 12~13세기의 금(金)나라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동해원(董解元)이 ‘제궁조(諸宮調)’로 개작할 때, 그런 결점을 보완해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대단원을 맺었다. 그렇게 하여 오늘날 전하는 『서상기』의 원형이 확립되었고, 왕실보가 그것을 희곡으로 만들었다.
텍스트는 100종 이상이나 되며, 가장 오래되고 귀중한 판본은 ‘홍치본(弘治本)’이다. 보통 연극에 사용되는 것은 ‘즉공관본(卽空觀本)’이며, 왕계사(王季思)가 주석을 달았다.
극의 길이는 보통 원나라 잡극의 5편에 해당하고, 모두 21절(折, 곡을 중심으로 한 단락)로 이루어져 있다.
■ 봉건사회에서 피어난 장군서와 최앵앵의 사랑
서락(西洛)의 청년 장군서(張君瑞)는 부모를 잃고 천하를 떠도는 신세였다. 어느 날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는 도중 보구사(普救寺)라는 절을 구경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한 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아름다운 여인을 많이 보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이었다. 절에서 선녀를 만나다니 별일이라고 군서는 생각했다.
그 미녀는 세상을 떠난 최상국(崔相國)의 외동딸 앵앵(鶯鶯)으로,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군서는 당장 서쪽 별채[서상(西廂)]에 방을 얻고는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를 엿보았으나, 앵앵 집안의 가풍이 몹시 엄격해서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비호(孫飛虎)라는 장수가 앵앵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아내로 삼으려고 병사 5,000명을 거느리고 절을 포위했다. 깜짝 놀란 앵앵의 어머니는 이 위기에서 구해 주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을 듣고 군서는 기꺼이 앞으로 나섰다. 먼저 그는 손비호에게 앵앵이 상복을 벗을 때까지 사흘의 말미를 달라 하고, 그 틈을 타서 의형제 두확(杜確) 장군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바로 달려온 장군은 적을 물리치고, 군서와 앵앵이 결혼 약속을 하는 것을 보고 축복하며 돌아갔다.
다음 날, 한껏 멋을 내고 기다리는 군서를 부르러 시녀 홍랑(紅娘)이 찾아왔다. 군서는 이제 결혼식을 거행하는 모양이라고 기뻐하며 앵앵 모녀의 거처로 뛰어 들어갔는데, 앵앵의 어머니는 앵앵을 시켜 군서에게 술을 한 잔 따르게 하고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알고 보니 앵앵에게는 어머니의 조카 정항(鄭恒)이라는 약혼자가 있어서 군서와의 약속을 파기하려 하는 것이었다. 군서는 화가 났지만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군서는 몸져눕고 말았다. 군서가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들은 앵앵은 내심 어머니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시녀 홍랑을 시켜 문병을 가게 했다. 홍랑의 입을 통해, 앵앵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안 군서는 편지를 써서 홍랑에게 건네주었다. 그 글을 읽고 앵앵은 홍랑을 야단쳤지만, 영리한 홍랑은 그런 앵앵의 본심을 잘 알고 있었다. 홍랑 앞에서 시치미를 떼던 앵앵은 답장을 써서 군서에게 전해 주고 오라 했다.
‘달을 기다리는 서쪽 별채 아래, 바람을 맞이하려 문이 반쯤 열리고 담장을 넘어 꽃 그림자 움직이네, 혹시 귀인이 오시려나 하고.’
군서는 앵앵의 글을 남몰래 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앵앵은 그날 밤 은밀히 찾아온 군서를 엄하게 질책하고는 멍하니 서 있는 군서를 남겨 두고 그냥 가 버렸다. 절망에 빠진 군서의 병은 더욱 깊어졌다. 군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앵앵은 홍랑을 데리고 다음 날 밤 군서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관습을 벗어던지고 밀회를 거듭하는 사이가 되었다. 마침내 그 사실을 알게 된 앵앵의 어머니는 우선 홍랑을 불러 엄하게 문책했는데, 홍랑은 있는 힘을 다해 두 사람을 변호했다.
앵앵의 혼례식 날, 고관이 되어 돌아온 군서
홍랑은 말했다.
“신의는 인간의 근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약속을 저버리셨으니 두 사람의 관계는 전적으로 부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 진상이 밝혀져 부인이 배신한 것이 알려지면,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홍랑의 호소는 마침내 부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하게 되었다. 그 대신 대대로 관직이 없는 남자를 사위로 맞이한 적이 없으니 과거에 합격할 때까지는 돌아오지 말라고 군서에게 명했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고하고, 군서는 도성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반년 후, 상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앵앵 앞으로 군서의 장원 급제 소식이 전해졌다. 앵앵은 기뻐하면서도 혹시 군서가 자신을 버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군서에게 온갖 선물을 보냈다.
바로 그때, 어머니의 조카이자 예전에 앵앵과 정혼한 사이였던 정항이 나타나, 군서는 벌써 위상서(衛常書)의 딸과 혼례를 올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화가 난 부인은 군서를 배은망덕한 놈이라 욕하고 원래대로 앵앵을 정항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앵앵의 혼례식 날, 고관이 되어 돌아온 군서는 앵앵의 어머니에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로 혼이 나 어안이 벙벙했다. 황망히 사실을 고했으나 어머니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 홍랑과 앵앵이 나타났다. 앵앵은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고 슬퍼했으나, 냉정한 홍랑은 정항의 말이 좀 이상하다면서, 앵앵의 어머니에게 두 사람을 대결시키는 게 어떻겠는냐고 권했다. 이윽고 군서와 정항이 만나 싸우고 있는데, 예전의 은인이자 혼인의 증인인 두확 장군이 나타나, 앵앵의 어머니에게 군서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거짓말이 탄로 나자 정항은 자살했다. 이렇게 하여 모든 장애를 넘어선 군서와 앵앵은 성대한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