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 봄날처럼 2019. 1. 29. 12:29



■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 누구인가 
법은 절도를 금한다. “도둑질하지 않는다”는 십계 중 일곱번째 계명이다. 고조선의 
팔도금법에도 있다. “도둑질을 하면 노비로 삼는다.” 절도가 용인되면, 즉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지 않으면, 사회 자체가 붕괴된다. 그러기에 절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회적 금기다. 
하지만 인간의 내부에는 절도에 대한 은밀한 욕망이 있다. 절도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많은 먹이를 획득하고자 하는 생명체의 생존욕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금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절도를 향한 욕망은 거침없이 드러난다. 
1992년 LA 폭동 때 우리는 그 야수적 욕망의 분출을 목도한 바 있다.
절도는 범죄지만, 인간은 한편으로 그 범죄를 합리화한다. 절도의 합리화는 부조리한 사회, 
주로 재화의 분배에 있어 불공정한 사회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절도 
행위자인 도둑을 찬미한다. 나는 고위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부정한 축재와 부잣집 
담장을 넘는 밤손님의 행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그 도둑이 넘었던 담장이 부정한 돈으로 쌓아올려진 것이라면, 월장(越墻)은 도리어 
미화되고 찬양된다. 혹 그 도둑이 자신의 약탈물을 달동네에라도 던져주었다면, 그는 
‘의적(義賊)’으로 다시 태어난다. 급기야 그는 전설이 되고 소설이 되고, 가난한 우리는 
일지매에 빠져들고 장길산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도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나는 조선시대의 도적에 대해 내가 아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조선시대 도둑에 관한 연구는 정치사, 경제사, 제도사 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사 연구의 
여담에 해당한다. 물론 몇몇 진지한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연구들은 논문으로 
쓰여진 것이라 너무 딱딱하고 근엄하다. 나는 그런 엄숙함이 싫다. 좀더 편하게 접근하고, 
기존 논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조선시대의 도둑에는 여러 스타일이 있다. 혼자 활동하는 도적이 있는가 하면, 떼를 지어 다니는 
군도(群盜)도 있다. 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 일시적으로 도적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기들 말로 수백년 유구한 전통이 빛난다는 그런 도적 집단도 있다. 구복(口腹)을 위해 고민 끝에 
도덕심을 눌러버리고 칼과 도끼를 들고 나서는 생계형 도적이 있는가 하면, 기성의 체제에 대한 
불만을 품고 저항하는 각성한 도적도 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진무구한 도적이 있는가 하면, 
종적을 종잡을 수 없는 신출귀몰한 그런 도적이 있다.
 
■ 전통 자랑하는 群盜 
어느 쪽도 재미가 있다. 
하지만 도둑도 일종의 직업이니만큼 좀더 전문적이고 세련된 형태가 좋지 않겠는가? 
굳이 예를 들자면 일지매(一枝梅) 같은 경우다. 
조수삼(趙秀三·1762~1849)은 자신의 독특한 저작 ‘추재기이(秋齋紀異)’에서 일지매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아주 짧막한 것이기에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일지매는 도둑 중의 협객이다. 매양 탐관오리들의 부정한 뇌물을 훔쳐 양생송사(養生送死)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처마와 처마 사이를 날고 벽에 붙어 날래기가 귀신이다. 
도둑을 맞은 집은 어떤 도둑이 들었는지 모를 것이지만 스스로 자기의 표지를 매화 한 가지 
붉게 찍어 놓는다. 대개 혐의를 남에게 옮기지 않으려는 까닭이었다. 
매화 한 가지 혈표(血標)를 찍어 놓고 
부정의 재물 풀어 가난한 자 돕노라. 
때 못 만난 영웅은 예로부터 있었으니 
오강(吳江) 옛적에 비단돛이 떠오놋다. 

오강의 비단돛이란 중국 삼국시대 감녕(甘寧)의 고사. 한때 적도(賊徒)로 횡행하여 
오강에서 비단돛을 달고 다녔다 한다.”(이조한문단편선(중), 일지사, 1978, 339면) 

일지매는 잡히지 않는다. 완벽하다. 게다가 매화꽃까지 남겨 남에게 피해가 가게 하지 않는다니 
멋있지 않은가? 나는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서보다 본 적도 없는 일지매의 
붉은 매화에서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느껴진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신가. 
또 탐관오리의 부정한 재물을 털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니, 민중의 벗인 의적이다. 
이런 도둑은 당연히 찬양의 대상이 된다. 조수삼은 그를 “때를 못 만난 영웅”이라고 하지 않은가. 
일지매와 같은 유형의 도적으로 ‘아래적(我來賊)’이 있다. ‘어수신화(禦睡新話)’란 책에 
있는 이야기다. 어떤 도적이 무엇을 훔치고 나면 반드시 ‘아래(我來·나 왔다 간다)’라는 
두 글자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하나 아래적은 일지매보다 한 등급 밑이다. 의적이 아닌데다가 
포도청에 잡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 기지를 써서 탈출하지만 말이다. 
일지매와 아래적은 혼자 활동하는 도둑이다. 그 건너편에 무리 도둑인 군도(群盜)가 있다.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聚則盜, 散則民)’는 말처럼 중세의 군도는 
기본적으로 백성, 농민이다. 중세의 사회생산은 전적으로 농업생산이다. 농민이 농토를 
떠나면 사회는 붕괴한다. 지배하는 자들은 언제나 거룩한 이념(조선으로 치면 주자 성리학)을 
내세워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지만, 그 이념의 속내는 매우 간단하다. 
그 이념이란 지배층은 일하지 않고 농민만 뼈 빠지게 일해야만 하는 ‘비합리’를 ‘
합리’로 분식(粉飾)한 어려운 말의 덩어리다. 
물론 이념은 언제나 지배층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켜진 시대는 
유사 이래 없었다. 지배하는 자들의 욕망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그리하여 지배층의 욕망이 
농민을 지나치게 압박하면, 달리 말해 농민을 지나치게 쥐어짜면 농민은 토지를 떠난다. 
지주의 토지 침탈, 과도한 세금 등으로 인한 농민의 토지 이탈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항시 일어나는 일이었다. 왕조의 건국 초기 짧은 안정기를 벗어나면 농민의 삶은 언제나 괴로웠다. 
여기에 흉년과 전염병이란 구체적 계기가 발생하면 토지로부터의 유리(遊離)는 필연적이다. 
토지를 떠난 농투성이들은 갈 곳이 없다. 떠돌다가 죽든지 아니면 다시 고향을 찾기 마련이다. 
이와는 달리 적극적인 저항의 형태가 있다. 도적이 되는 것이다. 
유개(流쾬)와 군도는 언제나 연관되어 있다. 18세기의 문인 이규상(李奎象)은 
‘우옹책(迂翁策)’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연래에 떠돌이 거지(流乞)들이 없는 때가 없었는데, 금년 가을 이후로는 보이지 않는다. 
허다한 떠돌이 거지들은 아마도 무리를 불러 모아 (도둑의) 근거지를 마련했을 것이다.” 
이처럼 토지로부터 이탈한 유민이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군도로 변하는 것이다. 
농민이 토지로부터 이탈했을 때 조직하는 군도의 형태도 퍽 다양하다. 
영조17년 조문벽(趙文璧)이란 사람이 영춘역(迎春驛)으로 귀양을 가는데, 이유인 즉 
그가 숙천군수(肅川郡守)로 있을 때 평안도의 극적(劇賊) 지용골(池龍骨)을 잡았다가 
놓친 죄 때문이었다. 이해에 관동(關東)·관북(關北)·관서(關西)·해서(海西) 4도(道)에 
기근이 들었고, 토지를 떠난 유민이 무리를 이루어 돌아다녔다. 서울에 있는 무리는 
‘후서강단(後西江團)’ 평양(平壤)에 있는 무리는 ‘폐사군단(廢四郡團)’ 재인(才人)이 조직한 무리는 
‘채단(彩團)’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무리는 ‘유단(流團)’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기회를 틈타 
도둑이 되어 부고(府庫)를 습격해 탈취하였으나, 장리(將吏)가 체포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므로 
조정의 근심거리가 되었으나 끝내 잡지를 못했다고 한다.(영조실록 17년 4월8일) 
이 도적집단은 기근이라는 특정한 계기로 발생한 것이고, 또 그들의 출신지역이나 신분, 
경제적 처지에 따라 각각 달리 집단화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대개 기근으로 발생하는 유민은 떠돌다 죽거나, 어렵게 살아남으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일정한 근거지를 가진 세습적 도둑집단도 있다. 
앞서 잠시 인용한 이규상의 ‘우옹책’은 도둑의 방지책을 서술한 것인데, 
이 글에서 그가 든 근거지를 가진 세습적 도둑집단을 보자. 그가 지목하는 군도는 
충청도 아산 근처의 한 큰 촌락이 근거지다. 다른 마을은 도둑이 침입해도 
이 마을만은 안전하다. 농사도 짓지 않고 상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거주민은 늘 
호의호식을 하면서 지낸다. 근래 도둑을 맞은 촌락들도 대개 이 마을의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다. 또 이 마을 사람들이 절도와 관련되어 잡혀도 금방 풀려 나온다. 
이규상은 이런 점들을 들어 이 마을이 도적촌이며, 
철저히 추궁하면 도둑의 소굴을 소탕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우옹책’의 도둑촌은 군도의 한 가지 스타일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산채가 있고 파수를 보는 
그런 도둑집단과 다를 뿐이다. 
실제 군도도 스타일이 여럿이라는 것만을 말해두려고 예를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