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한국사의 亂 ■ 비담의 난(毗曇-亂) / 신라 늘푸른 봄날처럼 2019. 1. 25. 16:49 ■ 비담의 난(毗曇-亂) 비담의 난(毗曇-亂)은 신라 645년 상대등에 오른 비담이 권력을 장악하여 647년 1월, 여주불능선리(여군은 나라를 다스릴 그릇이 못 된다)"라는 명분을 내걸고 염종의 군사와 함께 출정하여 일으킨 선덕여왕 대의 반란이다. 이로 비담은 도망치다가 김유신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고 그의 9족과 30명이 모두 숙청당했다. ●계기 647년 1월, 비담은 주위의 꾐에 넘어가 염종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때 선덕여왕의 심장병은 최고조에 달하여, 선덕여왕의 기력이 쇠할 때를 노려 난을 일으켰다는 일설이 있다. ●김유신과의 전투 ◎월성에서의 전투 난의 혼란스러운 기간 동안, 월성을 중심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김유신이, 먼저 월성을 장악하여 세가 밀린 비담은 월성에 진을 쳤다고 전해진다. ◎월성 추락 난 도중, 밤에 큰 유성이 떨어지자 이를 본 비담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 별의 추락은 여주가 패망하고 새로운 계림이 세워 질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본 유신군은 사기가 좋지 않았다. 이로 비담의 승리가 다시 보이는 추세가 되었다. ●승패 확정 이 때, 김유신은 한 가지 꾀을 내었는데 큰 연에다 불 붙인 허수아비를 달았고 그 연을 날렸다. 이는 꼭 별이 다시 올라가는 것처럼 보여, 반란군의 사기가 떨어졌다. 이 때를 공략해 김유신은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비담의 죽음 비담은 토벌소식을 듣고 급히 도망쳤다. 그러나, 서라벌도 못 벗어나고 김유신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진덕여왕 즉위 혼란스런 난 도중인, 647년 1월 8일에 선덕여왕이 승하하고 말았다. 결국 진덕여왕이 왕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