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근사록 (近思錄)
210. 근사록 (近思錄) / 저작자 주희(朱熹)
1176년에 간행된 책으로, 북송의 철학자 주돈이[周敦頤, 호는 염계(濂溪)], 정호[程顥, 호는 명도(明道)], 정이[程頤, 호는 이천(伊川)], 장재[張載, 장횡거(張橫渠)라고도 함]의 저서에서 발췌한 송학(宋學)의 입문서이다. 근사(近思)란 『논어』 「자장편(子張篇)」에 나오는 “간절하게 묻되 가까운 것부터 생각해 나간다면, 인은 그 안에 있다(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의문을 규명하고, 가깝고 쉬운 것부터 실천해 천하와 우주로 넓혀 나가는 것이 진정한 학문의 태도라는 것이다.
송나라 때 성립한 신유학(新儒學)인 송학[宋學, 성리학(性理學), 정주학(程朱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함]은 훈고주석을 중심으로 하던 종전의 유학을 일신하여, 우주 자연의 근본 원리에서 사회, 인륜, 개인 수양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체계 속에 끌어안는 장대한 철학을 만들어 냈으나 초학자에게는 무척 어려운 학문이었다.
그래서 주희(朱熹, 1130~1200)는 친구인 여조겸(呂祖謙1) , 1137~1181)과 함께 송학의 기초를 닦은 북송의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의 저서에서 그 학문의 진수를 나타내는 말 622조를 선별하고, 이를 14권으로 분류하여 초학자를 위한 입문서로 삼았다. 그것이 바로 『근사록』이다.
이 책 안에는 송학의 주요 개념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즉, 태극(太極, 理)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 氣)을 거쳐 만물(萬物)이라는 이기(理氣)를 중심으로 한 우주생성론, 성즉리(性卽理)라는 인성론, 격물궁리(格物窮理)를 중심으로 한 학문론,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강조하는 정치론 등 송학의 골격이 알차게 정리되어 있다.
주희는 이 책에 큰 자신감을 가져 늘 “사서(四書)는 육경의 발판이고, 『근사록』은 사서의 발판이다”라고 말했다.
1) 자는 구공(舊恭)이고, 호는 동래(東萊)이다. 30세 때 주희와 알게 되어 오랫동안 교류했다. 육상산(陸象山), 장식(張栻)등과도 교류했고, 그런 면에서 주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근사록』의 편찬은 그가 주희의 한천정사(寒泉精舍,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을 수양하는 곳)를 방문해 약 40일간 머물며 읽은 북송학자의 저술에서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근사록』은 14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처음에는 제목이 없었다. 뒷날 송나라의 섭채(葉采)가 주석을 달 때, 각 부분에 간결한 제목을 붙였다.
1) 도체(道體)
송학에 담긴 우주와 인간의 근본 원리를 설명한 것으로, 머리말에서는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이 거론된다.
우주의 근원은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고, 이것이 움직이면(動) 양이 생기며,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정(靜)에 이르러 음이 생기는데, 그것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인다. 이렇게 하여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고, 서로 변화, 합일하여 수(水) · 화(火) · 목(木) · 금(金) · 토(土)의 오행(五行)이 생기고, 그 운행으로 인해 사계절이 순환한다. 양은 남자, 음은 여자이며, 두 기운이 교류해 만물이 생긴다. 이렇게 만물은 연속적으로 생기며, 그 변화는 무한하다.
인간은 가장 뛰어난 음양의 기를 받았기에 만물의 영장이다. 특히 성인은 중정인의(中正仁義)로 사람의 행위에 규범을 정한다. 그 덕은 천지와도 같고, 그 밝음은 해와 달과 같다. 〈주돈이〉
인간의 본성은 그냥 그대로 천리(天理)이다[성즉리(性卽理)]. 모든 것은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인간의 본성 또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늘 선하지만, 정이 움직여도 절도가 있으면 반드시 선하고, 선하지 못함은 절도가 없을 때 생긴다. 〈정이〉
2) 논학(論學)
학문을 하는 데 필요한 요체를 설명한 말을 모았다. 주희는 초학자인 경우에는 이 부분부터 읽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성인의 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머문다. 이것을 오래 축적하면 덕행이 되고, 실천하면 대업(大業)이 된다. 문장만 매만지는 자는 고루하다. 〈주돈이〉
성인의 길은 평탄한 대로와 같은데, 배우는 사람들이 그 성인의 문을 찾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문에만 들어서면 멀어서 이르지 못할 것이 없으니 경서(經書)가 바로 그 문이다. 오늘날 경서를 배우는 사람은 많으나, 겉만 더듬고 알맹이를 보지 못한다. 경서는 ‘길’을 담고 있다. 그 말을 외우고 자구(字句)의 해석에만 매달려 중요한 ‘길’을 찾지 못한다면 다 부질없는 일이다. 〈정이〉
요즈음 사람들이 학문하는 것을 보면 마치 산등성이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평탄한 곳에서는 씩씩하게 잘 걸어가지만, 조금만 길이 험해지면 그만두고 만다. 학문은 과감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이〉
3) 치지(致知)
송학의 방법론은 ‘격물궁리(格物窮理)’이다. 곧,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캐서 만물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치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앎에 이르는(致知)’ 일이다.
하나의 사물에는 하나의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그 이치를 끝까지 캐야 한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책을 읽고 올바른 도리를 밝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고, 고금의 인물을 논해 그 시비를 판별하는 방법이나 사물을 직접 접해 보고 올바르게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이치를 밝히는 길이다. 어떤 사람이 ‘격물(格物)이란 하나의 사물에 대한 이치를 안다는 말인가, 아니면 하나의 이치를 알면 만 가지 이치를 다 알게 된다는 말인가?’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를 안다고 해서 어떻게 전체를 관통할 수 있겠는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안자(顔子, 안회) 같은 사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 하나를 알고 내일 또 하나를 알아 가는 것이 쌓이면 자연히 전체를 알게 되는 것이다.” 〈정이〉
4) 존양(存養)
『맹자』에 나오는 “그 마음의 본성을 지켜 착한 성품을 기른다(存養)”라는 말에서 나온 존양은 하늘이 내려 준 선한 마음을 잃지 않고 기르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송학에서 가르치는 수양법의 목적이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성인은 배워서 되는 것입니까?”
“아니다.”
“그러면 성인이 되는 요령은 있습니까?”
“있다.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해야 한다. ‘일(一)’이란 무욕을 뜻하고, 무욕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허(虛)해지며, 마음이 사물을 느끼더라도 올바르게 움직인다. 마음이 고요하고 어디에도 사로잡힘이 없으면 천하의 이치에 통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미 성인이라 할 수 있다.” 〈주돈이〉
말을 신중히 하여 덕을 기르고, 식음을 절제하여 몸을 기른다.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 가운데서 언어와 식음 이상의 것은 없다. 〈정이〉
5) 극치(克治)
사욕을 극복하고 사념을 다스리는 내용으로, 『논어』의 ‘극기복례(克己復禮)’, 『역경(易經)』의 ‘개과천선(改過遷善)’(선한 것을 보면 거기로 옮겨 가고, 잘못이 있으면 고친다)에 해당한다. 주희는 이 부분을 「개과천선극기복례편」이라 했다.
올바른 도리와 사욕은 늘 사람의 마음속에서 서로 다투고 있다. 군자와 소인은 어느 쪽의 비율이 더 높으냐에 달려 있다. 도리의 체득이 점점 늘어나면 사욕은 자연히 소멸되어 가고, 사욕이 완전히 소멸된 사람이 바로 현인이다. 〈정이〉
6) 가도(家道)
『대학(大學)』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가운데 제가(齊家)의 길에 대한 말을 모아 놓았다.
가정에서는 가족 간의 인정이 예를 잊게 하고, 자애가 의(義)를 무시하게 한다. 의지가 강한 사람만이 개인적인 사랑에 빠져도 올바른 이치를 잊는 법이 없다. 〈정이〉
부모와 손님을 접대할 때는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갖추어야 하고, 돈 문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를 봉양할 때는 자신의 고생을 모르게 해야 한다. 무리한다는 것을 알면 부모의 마음이 편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재〉
7) 출처(出處)
벼슬하는 것을 출(出)이라 하고, 물러나 집에 머무는 것을 처(處)라 하는데, 출처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출처」는 원칙도 없이 영달을 구하는 것을 나무라는 글이다.
현자는 자신이 낮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 발탁되기를 바라거나 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옛사람이 군주가 예를 갖추어 불렀을 때만 거기에 응한 것은 결코 거만해서가 아니다. 덕을 존중하고 도를 즐기는 군주가 아니면 함께 훌륭하고 바른 정치를 펴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병폐는 남의 조소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관리가 되지 못하고, 조의조식(粗衣粗食)의 가난한 생활을 하면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런 사람은 살아야 할 때 살고,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고, 지금은 높은 봉록을 받더라도 내일은 그것을 버리고, 오늘은 부자지만 내일이면 배가 고플 수 있음을 태연히 여기며, 오로지 정의를 따르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장재〉
8) 치체(治體)
치국평천하의 근본에 대해 말한 글들을 모아 놓았다.
군주가 인의(仁義)의 덕을 갖추고 있으면, 불인불의(不仁不義)한 사람이 없어진다. 천하가 평화로운가 어지러운가는 오로지 군주가 인의로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으니, 군주가 정도를 벗어나면 불인불의가 일어나 반드시 정치가 혼란스러워진다. 정치의 실책이나 인재 등용의 오류는 지모를 갖춘 신하가 고치고, 강직한 신하가 간해야 한다. 그러나 군주의 마음에 불인불의가 남아 있으면 계속 일어나는 정치적 실패를 고칠 수 없다. 〈정이〉
9) 치법(治法)
천하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예법과 제도에 관한 내용을 모아 놓았다.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데, 요즈음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한낱 승냥이와 물개도 그 본분을 알고 있는데, 하물며 사대부가 이것을 가벼이 여긴다. 부모는 열심히 모시면서 조상을 받들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각 가정은 반드시 신주를 모신 사당을 짓고, 매달 초하룻날에는 꼭 새로운 제물로 제사를 올려야 한다. 동짓날에는 시조에게, 입춘에는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신 날에는 신주를 내실로 옮겨 제사를 지낸다. 무릇 죽은 사람을 받드는 예는 산 사람을 모시는 것보다 더 후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제사를 마음에 새기고 잘 지낸다면, 어린이도 점점 예의를 알게 될 것이다. 〈정이〉
10) 정사(政事)
정치를 할 때 지녀야 할 구체적인 마음가짐을 다루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실무에도 능통해야 한다. 천하의 일은 가정의 일과 비슷하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정이〉
11) 교학(敎學)
교육의 길에 대한 글을 모아 놓았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 대상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잘못 이끌게 되니,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세심하게 관찰한 뒤에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성인의 통찰력은 『장자』에 나오는, 소를 잡는 요리사 이야기와 비슷하다. 살과 고기 사이의 틈을 알고, 거기에 칼을 대야 매끄럽게 자를 수 있는 것이다. 〈장재〉
12) 계경(戒警)
잘못을 고치는 것과 사람이 가지기 쉬운 결함에 대한 글을 모아 놓았다.
자로(子路)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으면 기뻐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이름이 후세에 남아 있다. 요즈음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받으면 모른 척하는데, 이는 마치 몸의 병을 소중히 여겨 의사를 피하는 것과 같다. 죽어도 그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주돈이〉
13) 변별이단(辨別異端)
정통 학문인 유학을 지키고, 이단 학문, 특히 불교와 노장(老莊)을 배격하는 내용이다.
양주[楊朱, BC 395~BC 335, 위아설(爲我說)각주1) 을 주장한 사상가]와 묵적[墨翟, BC 480~BC 390, 겸애설(兼愛說)각주2) 을 주장한 사상가. 묵자(墨子)라고도 함]으로 인한 피해는 신불해(申不害, BC 400~BC 337, 전국시대의 법가 사상가)와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 전국시대의 법가 사상가)보다 더 심하다. 양주의 위아설은 인(仁)과 비슷하며, 묵적의 겸애설은 의(義)와 비슷하다. 신불해와 한비자의 설은 천박하기에 알기 쉽다. 그러므로 맹자는 양주와 묵적의 설을 풀이해 공박했다. 그 설이 세상을 미혹시키기 때문이다. 불교와 노장의 설은 도리에 가깝기에 양주와 묵적에 비할 수 없이 해가 심하다. 양주와 묵적의 해는 맹자가 밝혀 물리쳤기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정호〉
14) 총론성현(總論聖賢)
고대 성현의 풍속에 대한 말을 모아 놓았다. 송학의 최종 목표는 ‘배워서 성현에 이르는 것’이다. 이 장은 『근사록』 전편을 정리하는 총론이다.
공자는 온 천지요, 안자는 따스한 봄바람과 상서로운 구름 같고, 맹자는 태산의 바위와 같은 기상이다. 공자는 흔적이 없고, 안자는 희미하나마 흔적이 있으며, 맹자는 그 흔적이 뚜렷하다. 공자는 쾌활한 사람이요, 안자는 화기애애하고 겸손한 사람이며, 맹자는 격렬한 웅변을 잘하는 사람이다. 〈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