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의 샘/ Classic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 봄의 제전 (The Rite of Spring)

늘푸른 봄날처럼 2019. 1. 22. 19:15


Igor Stravinsky,1882-1971
The Rite of Spring, Ballet
봄의 제전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Cond/ Monteux Pierre
    part 1: Adoration of the Eaeth (16;22) part 2: The Sacrifice (19;32) 초연을 지휘한 피에르 몽퇴는 이 곡의 데생을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로 들었을 때 '이것은 스캔들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곡을 초연한 경위는 역사상으로 유명한 스캔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13년 5월 22일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이 진니스키 안무로 이 신작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음악이 막 울려 퍼질 무렵 이미 소동은 시작 되었다. 한 개의 바순이 그때까지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고음역에서 신비로운 솔로를 부는 대목이었다. 음악이 진행됨에 따라 고의적인 조소는 차츰 높아지고 그에 반대하는 진보파의 외침이 퍼져나가고 종국에는 방석이 난무하는 대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기괴한 리듬, 기분 나쁜 선율, 이상한 포효, 전통적인 음악에 대한 철저한 파괴행위는 보수적인 청중의 격노를 샀고 스트라빈스키는 인트로 몇 마디만 듣고는 극장을 튀어 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봄의 제전의 기발함, 새로움이라는 것도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색바랜 것으로까지 여겨지게 되었으니 무상한 일이다.
    
    20세기 최대의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188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71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불새>를 비롯한 많은 발레·오페라, 그 밖의 여러가지 양식의 혁신적인 명작을 
    많이 남겼기 때문에 음악의 혁명가라고 불린다. 
    매부리코에다 큰 눈망울을 번뜩이는 얼굴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트라빈스키는 개성이 매우 강하였다. 
    그는 화가 피카소와 아주 친하게 지내면서 예술적으로 교류했는데 
    피카소가 세계의 미술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했다면, 
    스트라빈스키는 세계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음표로 
    기막힌 음악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피카소가 탈바꿈을 많이 하여 나중엔 입체파를 이룩했듯이, 
    스트라빈스키 또한 여러 단계의 변화를 거친다. 
    20대 시절의 제1기, 러시아 전설을 다룬 <봄의 제전>을 비롯한 
    몇몇 작품을 남겼는데, 이때를 민족주의적 원시주의라고 부른다. 
    오페라 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한 여러작품을 쓴 
    40대 전후는 제2기로서 신고전주의라고 불리며, 
    1950년 초부터는 제3기로서 재즈 음악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종교음악도 
    많이 썼는데 12음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음렬시대로 불린다. 
    페트루슈카와 이 봄의제전 등은 제1기,민족주의적 원시주의에 속하는데
    보수주의 청중들의 비난과 진보주의의 찬사를 동시에 받으면서도
    향기나는 음악의 혁명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아폴로'라고 불릴 만하다.
    스트라빈스키는 술을 즐기곤 했다. 
    이태백처럼 술로 영감을 자주 얻었으나 정작 오선지에 옮길 때엔 
    뜻대로 되지 않아 작곡을 집어치우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취해도 결코 주정을 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매양 음악 혁명가로서의 긍지를 품고 
    작곡만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술을 좋아하긴 했으나 방탕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1936년 프랑스에 귀화한 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건너가 1945년 국적을 바꾸었다는 사실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뒤엔 그의 유언에 따라 
    이탈리아에 묻혔다는 것이 조금 야릇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