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한국사의 亂

■ 발기의 난 / 고구려

늘푸른 봄날처럼 2019. 1. 22. 00:41


    
    ■발기의 난(196년)
    
    고발기(高拔奇/高發岐)는 고구려 신대왕의 아들이다. 두 명의 발기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장남 발기(拔奇)
    한자로 拔奇로 표현되는 발기는 신대왕의 맏아들이다.
    그러나 그는 신대왕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동생인 남무에게 태자 자리도 빼앗긴다.
    이후 남무가 왕위에 오른 후, 196년에 연나부의 귀족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후한의 요동 태수인 공손강에게 의탁해 기회를 노렸으나,
    고국천왕에게 진압당하고,요동에서 여생을 보냈다.
    ●삼남 발기(發岐)
    한자로 發岐로 표현되는 발기는(?~197년) 신대왕의 셋째 아들로 여겨진다.
    197년에 고국천왕이 죽자, 왕후인 우씨는 그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 
    발기를 찾아가 왕위에 오를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고국천왕의 죽음을 몰랐던 발기는 이를 거부하고, 
    왕위는 동생인 고연우(산상왕)에게 돌아간다.
    이후 우씨와 연우가 자신을 속이고 왕위에 오른 것을 원망한 발기는, 
    군사를 동원해 궁궐을 공격했고 산상왕의 처자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산상왕의 동생인 고계수에 의해 진압당하고, 
    발기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였다.
    ●그의 정체
    위의 두 인물은 후한의 요동 태수에게 의탁했다는 점 
    등을 들어 동일 인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박영규의 이론에 따르면, 앞의 발기와 뒤의 발기는 
    다른 인물이다. 근거로는 발기(拔奇)의 아들인 
    고박위거가 후에 고추가
    (신라의 갈문왕, 조선의 대원군과 비슷)의 작위에 오르는 점, 
    발기(發岐)가 요동 태수를 찾아갔을 때 
    자신을 고국천왕의 동생으로 소개했다는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