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 다경 (茶經)
506. 다경 (茶經) / 저작자 육우(陸羽)
770년경에 만들어진 최초의 다도서로, 차를 마시는 풍습이 널리 퍼진 당나라 중기에 간행되었다. ‘다경’이란 차의 교과서라는 뜻이다. 상·중·하 3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의 기원에서 시작해 도구와 끓이는 법, 마시는 법을 정신적 · 미적인 감각으로 풀어 쓴 글이다.
저자 육우는 8세기 때 당나라 호북성 사람이다. 3세 때 고아가 되어 승려원에서 자라다가 도망친 뒤 연극배우 집단에 들어가 그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뒷날 상원(上元) 초년(760)에 호주(湖州) 근교에 있는 경승지 초계(苕溪)에 은거해 자유롭게 살며 문인·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집착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육우는 차에 깊이 빠져들어 차와 관련된 생활의 성과를 초계에 은거하여 『다경』으로 집약했다. 이 책이 나오면서 차를 마시는 풍습이 점점 널리 퍼져나가자, 차를 파는 사람들은 도자기로 육우의 상을 만들어 부뚜막의 굴뚝 곁에 놓아두고 다신(茶神)으로 소중히 모셨다고 한다. 다도로 이름이 알려진 뒤부터는 때로 고관의 집에 드나들며 차를 끓여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중국 다도의 시조가 되었다.
■ 당나라 병차를 중심으로 기록한 최초의 다도서
차의 원산지는 인도의 아삼(Assam) 지방이다. 중국에는 아주 오래전에 운남(雲南)을 거쳐 사천(四川)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漢)나라 때에는 이미 사천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것이 양자강을 따라 내려와 강남으로 전해졌고, 남북조시대에 북조인은 유제 음료를 마시고, 남조인은 차[명(茗)이라 불렀다]를 마셨다고 한다.
수나라와 당나라에 이르러 남북이 통일되자, 차 마시는 풍습이 화북 지방까지 전해졌다. 일반 민중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8세기 당나라 현종 때부터이며, 그 풍조를 반영해 이 책의 저자인 육우와 같은 다인(茶人)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상권은 원(源, 차의 기원), 구(具, 제차 도구), 조(造, 차 제조법)에 대하여, 중권은 기(器, 차 그릇)에 대하여, 하권은 자(煮, 끓이는 법), 음(飮, 마시는 법), 사(事, 차에 관련된 문헌), 출(出, 산지), 약(略, 약식 차), 도(圖, 위의 내용을 제각기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 두기를 권하는 내용) 등이 총 3권 10편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 기술된 차 마시는 법은 오늘날 한국이나 일본에서 즐기는 말차(抹茶)1) 나 전차(煎茶)2) 와는 다른 것으로, 당나라 시대 특유의 병차(餠茶)에 관한 내용이다. 병차는 잎을 쪄서 맷돌로 간 후 떡처럼 덩어리로 만들어 건조시킨 것인데, 그것을 굽거나 간 후 분말로 만든 다음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거나 끓여서 마시는 것이다.
1) 말차란 녹차의 분류로서, 시루에서 찻잎을 말려 간 가루
2) 잎차를 다관에 넣어 우려서 마시는 행위 또는 그 차
『다경』은 차를 끓이는 법과 마시는 법에 일종의 정신적인 가치를 두고 미학적으로 기술했다.
제1편 「차의 기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차에는 진정 작용이 있으므로 정려(精勵)하고 근검(勤儉)한 사람에게 적합하다.”
또 제4편 「다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완(盌, 찻잔)은 월주[趙州,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 부근]에서 만들어진 것이 으뜸이고, 그다음은 정주[鼎州, 섬서성(陝西省) 경양(涇陽)]라 할 수 있고, 이어서 무주[婺州, 절강성 금용(金茸)]와 악주[岳州, 호북성 악양(岳陽)], 수주[壽州, 안휘성(安徽省) 수(壽)], 그리고 홍주[洪州, 강서성 남창(南昌)] 순이다.
형주[邢州, 하북성 형대(邢臺)]의 찻잔을 월주보다 높이 치는 설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형주의 도자기를 은이라고 한다면 월주의 도자기는 옥과 같다. 이것이 형주가 월주에 미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형주의 도자기를 눈이라고 한다면 월주의 도자기는 얼음과도 같다. 이것이 형주가 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형주의 도자기는 하얗기 때문에 차 색깔이 불그스름하게 보이지만, 월주의 도자기는 푸르기 때문에 차의 색깔이 녹색으로 보인다. 이것이 형주가 월주에 미치지 못하는 세 번째 이유이다.”
■ 입에 넣으면 쓰고, 목으로 넘기면 달콤하다
이러한 평가를 통해 차를 마시는 행위에도 미적인 면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다음의 기술을 통해서는 당나라 때에 마시던 차가 담황색(淡黃色)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차의 색깔은 상(緗, 담황)이고, 그 형(馨, 향기)은 아름답다. 입에 넣으면 쓰고, 목으로 넘기면 달콤하다.” (제5편)
찻잎을 쪄서 갈거나 구우면 엽록소가 변해서 담황색이 된다. 푸른색 월주의 도자기에 담황색 차를 넣으면 녹색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차의 맛에 대한 표현 또한 너무도 적절하다.
차 끓이는 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물은 산수(山水, 산의 물)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다음은 강수(江水, 강물)이며, 우물물은 그다음이다. 산수는 유천석지[乳泉石池, 종유동(鍾乳洞), 곧 석회암 동굴에서 솟아오르는 물]에서 천천히 흐르는 물이 가장 좋다.” (제5편)
중국의 우물물은 거의가 경수(硬水)이기 때문에 마시기에 적절치 않고, 종유동의 용천수는 미네랄이 많이 함유되어 가장 맛이 좋다.
물을 끓이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있다.
“그 물이 물고기 눈알처럼 방울이 떠올라 약간 소리를 내는 것을 일비(一沸)라고 한다. 솥 가장자리로 샘물이 솟아오르듯 거품이 연속해 올라오는 것을 이비(二沸)라 하고, 물이 끓어올라 표면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삼비(三沸)라고 한다. 그 이상 끓이면 안 된다. 일비에서 뜨거운 물과 말차를 적당량 섞은 다음 소금을 넣어 맛을 낸다. (······) 이비에서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떠낸 뒤 대나무 젓가락으로 뜨거운 물의 중심을 둥글게 저으면서 적당한 양의 말차를 중심에 넣는다. 잠시 그대로 두면 뜨거운 물이 거친 파도처럼 거품을 내게 되는데, 그때 미리 퍼 둔 뜨거운 물을 부어 파도를 잠재우고 차에 거품이 일게 한다.” (제5편)
이처럼 당나라 때의 차 마시는 법은 병차를 가루로 만들어 소금을 조금 넣고 가마에서 끓이는 것이었다. 오늘날 몽골이나 티베트에서 차를 끓이는 방법과 비슷하다.
티베트나 몽골에서는 전차(磚茶)라는 차 덩어리를 으깨서 끓인 다음, 거기에 소금을 넣어 다즙(茶汁)을 만든 뒤 우유와 섞어 마신다. 다즙을 만드는 과정까지는 당나라 때의 차 끓이는 방식과 동일하다.